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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벚꽃과 황사

입력
2015.04.0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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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작가 김승옥은 단편 무진기행에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무진(霧津)의 안개를 그렇게 표현했다. 바닷가 소읍을 감싼 그 안개는 혼란스럽고 몽환적이었지만, 아늑한 휴식과 평온을 가져다 주는 모성의 숨결이기도 했다.

▦ 해무(海霧)든, 산 속의 운무(雲霧)든, 아니면 초가을 아침 코스모스 길을 온통 순결한 젖빛 수분으로 뽀얗게 뒤덮던 것이든, 안개는 언제나 가슴 설레는 청량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 순백의 이미지도 어느덧 황사와 미세먼지로 심각하게 오염됐다. 현상은 다르지만 시야를 뿌옇게 가린다는 공통점이 이미지의 혼선을 일으켜 이젠 안개가 껴도 왠지 불안하고 꺼림칙한 기분이 앞선다. 미세먼지를 가리키는 말인 ‘은밀한 살인자’에게 포위된 느낌이랄까.

▦ 해마다 조금씩 들쭉날쭉 하지만 봄철 황사와 미세먼지는 점점 심해진다. 지난달 국내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1㎥ 당 66㎍으로 지난해 3월보다 10㎍/㎥ 짙었다. 서울은 상황이 더 나빠 지난해보다 11㎍/㎥ 짙어진 71㎍/㎥를 기록, 최근 5년 중 가장 심했다. 노약자 외출이 위험한 미세먼지 상황 ‘나쁨’이 80㎍/㎥인 걸 감안하면 3월 내내 숨 쉬기조차 위험했다는 얘기다. 빈도도 잦았다. 3월 황사 발생일수는 평년 1.8일이지만, 지난달 서울은 무려 8일이나 됐다.

▦ 지난달 황사와 미세먼지가 특히 심했던 원인으로는 봄 가뭄이 꼽힌다. 황사 발원지인 내몽골의 3월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 이하였다고 한다. 서울에도 평년(47.2㎜)의 20%에 불과한 9.6㎜의 비가 내렸을 뿐이다. 게다가 봄바람도 약해 대기 중의 미세먼지가 가실 사이 없이 답답하게 떠돌았던 것이다. 남녘에서 지난달 하순부터 다투어 피기 시작한 벚꽃이 다음주엔 마침내 서울ㆍ중부에서도 꽃 잔치를 벌인다지만, 그 놈의 황사와 미세먼지가 또 훼방을 놓을 것 같아 걱정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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