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진격대학교’가 있다. 물론 가상이다. 진격대라고 이름을 붙인 건 취업사관학교가 되어가는 특정 대학들에 국한된 사례로 언급되는 걸 피해서다. 하지만 그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기가 찬 상황들은 곧 우리의 현실이다. 현재 우리의 대학교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헤어스타일 2 대 8로 정돈하기, 거울 보며 미소 짓기, 항상 웃으며 좋은 인상주기, 양복에 어울리는 넥타이 종류 외우기, 넥타이 바르게 매는 법 익히기 등등. 미용학원이나 백화점 점원이 배워야 할 법한 내용들이지만, 안타깝게도 진격대에서 배우는 ‘신입생 길잡이’ 필수 강의 내용이다. 심지어 리더십 강의에서는 ‘기차 2인석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경우 창가가 상석이다’라는 문구에 형광펜으로 별표까지 해야 한다. 무려 3학점짜리 강의이기에 학생들은 ‘기차의 상석’ 위치까지 외워야 한다. ‘설마 이게 정말 대학 강의야?’라고 묻는다면 대한민국의 현실을 몰라도 참 모르는 사람이다.
학력과 서열주의 사회에 길들여진 20대가 점점 가해자인 괴물이 되어가는 현실을 고발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쓴 사회학자 오찬호가 이번에는 대학 사회의 민낯을 들춰냈다. 학생, 교수, 강사 등을 인터뷰하고 언론보도 등을 토대로 대학이 기업화되어 진격해가는 모습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진단한다.
저자는 ‘취업하기 위한 학원’으로 전락하는 대학을 날 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대학이 취업률을 우선으로 삼아 인문계 학과들을 통폐합하고, 인문계열 전공자들에게는 취업을 위해선 경영학을 복수전공해야 한다고 종용하며, 국제화라는 이름으로 철학이나 국문학도 무조건 영어 수업을 진행하는 ‘진상’짓도 서슴지 않는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되고 싶으면 논란이 될 만한 수강과목은 미리 피하라며 ‘혁명의 세계사’나 ‘NGO와 시민사회’ 같은 교양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의 가슴을 뜨끔하게 만든다.
취업 특강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외치라고 확인 사살을 한다. “쓸데없이 비판하지 않기”를. 회사의 상사들은 지시사항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저자는 꼬집는다. 이제 대학에게 ‘진리의 상아탑’ ‘지성의 전당’ ‘실천하는 지성’ 같은 말은 개나 줘버리라고. “기업에서 인문학 전공자는 싫다고 하면 대학은 그 이유를 묻는 게 아니라, 관련 학과부터 없애버린다. 마치 자신들의 의지를 알아달라는 신호를 보내듯이.”
2년 전 서울대 사회학과가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현 KT 회장)을 교수로 초빙하려다 학생들의 반발로 실패한 사례는 대학이 돈이 되는 가치에 어떻게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회학과가 굴지의 대기업 사장 출신을 영입하려 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든 기업 쪽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그래서 취업률도 좀 올리고, 아울러 ‘든든한 동문’을 장기적으로 확보하려 했던 게 아니었겠는가”라고 꼬집는다.
기업의 노예가 되어 버린 대학에서 수업을 받으면 학생들도 기업형 인간으로 변해가는지 모르겠다. 비판을 싫어하는 탈 정치적 인물로 말이다. 한 대학에서 강의를 끝낸 도올 김용옥은 강의 내내 스마트폰 메신저에만 정신이 쏠린 청춘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이렇게 표현했다. “일체 자기향상에 관한 의지나 호기심이 부재한 상태, 초현실주의적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진실로 깊은 상처를 안겨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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