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제재 풀려 서방 자본 진출땐 기업가 정신 살아나 정치도 변화
대통령 위 지도자 하메네이가 열쇠, 절대 영향력 혁명수비대도 걸림돌
공화당과 중동 동맹국들 반발 커 오바마의 달래기 작업 난항 예고
2일 밤(현지 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 핵 협상 타결 소식과 함께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36년간 볼 수 없던 일이 벌어졌다. 이란 국영TV가 ‘원수의 나라’인 미국 대통령의 협상 관련 연설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극심한 청년 실업과 4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으로 고생해온 이란 시민 수백 명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춤을 추거나 경적을 울리면서 협상 타결을 반겼다.
환호하는 이란 시민들을 바라보며, 미국 워싱턴에서는 벌써부터 협상 타결이 지구상의 유일한 신정(神政) 국가인 이란에 변화를 이끌어낼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미 국가안보위원회(NSC) 출신인 개리 식 컬럼비아대 교수는 2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협상은 이란 내부에서 역사적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제재가 풀려 서방 기업과 자본이 진출하고 이란 내부에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면, 정치체제의 변화도 불가피하다”고 단언했다. 국방부 소속 이란 전문가인 데이비드 크리스도 “개혁을 주도해온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정치세력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론도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카림 사자드포 연구위원은 “변화의 열쇠는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최고지도자 하야톨라 하메네이의 손에 달렸다”고 말했다. 사자드포 연구원에 따르면 26년간 이란을 통치해온 하메네이는 의심이 많아 결정적 순간마다 역대 이란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 세웠다. 사자드포 연구위원은 “제재가 풀린 뒤에도 이란 체감 경기가 크게 개선되지 않으면, 그 책임을 협상 주도세력에게 미루고 권력을 빼앗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란 내부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혁명수비대’도 걸림돌로 지목된다. 혁명수비대는 미국과의 대결 구도를 이용해 정치적 힘을 키운 것은 물론이고, 경제제재를 틈타 주요 물자의 밀수로 경제적 이익도 독점해왔기 때문이다.
핵 협상 타결을 계기로 아랍 정세에도 중대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강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부에서는 핵협상 타결의 ‘부수효과’로 시리아 내전과 후티 반군의 반란으로 촉발된 예멘 사태의 해결을 기대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으로 빚어진 유혈갈등에 대해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해빙 무드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임기 2년을 남긴 시점에서 ‘쿠바 수교’와 함께 또 다른 외교적 성과를 가시권에 두게 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과 중동 동맹국 설득 작업에 이미 돌입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2일 오후 공화당 지도부는 물론이고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등 중동 동맹국 지도자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로 가는 길을 막기보다는 길을 깔아준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와 호흡을 맞춰온 존 베이너 하원의장도 “백악관이 당초 제시했던 목표에서 걱정스러울 정도로 크게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이는 ‘예상했던 것보다 미국이 많은 양보를 얻어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설득 작업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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