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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교통표지판이 아닙니다

입력
2015.04.0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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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60개국서 1000점 수집… 공통 메세지는 '희생과 배려'

송병구 목사는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십자가가 내포한 사랑의 보편성과 절대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며 "무조건 복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병구 목사는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십자가가 내포한 사랑의 보편성과 절대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며 "무조건 복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처에 십자가가 걸려있다. 하지만 십자가의 의미가 단지 ‘여기 교회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목사가 있다. 20년째 60여개국 1,000여점을 수집해 온 송병구 목사(경기 의왕시 색동교회 담임 목사)다. 그는 십자가에 매료된 연구자이자 해설자다. 6년째 경기 김포시 고촌감리교회에서 상설전시를 해왔고 최근 ‘송병구 목사가 쉽게 쓴 십자가 이야기(신앙과 지성사)를 펴냈다. 부활절(5일)을 앞둔 1일 송 목사를 만났다.

십자가와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올라간다. “처음 김포 월곶면 산골에 개척교회를 여는데 매끈한 십자가는 싫더라고요. 동네에서 어른 키만한 물푸레나무와 녹슨 철조망을 주워 십자가를 엮었어요. 밤마다 대남ㆍ대북방송이 왕왕거리는 마을 현실이나 고통을 담은 것 같아 벽에 세워두고 참 열심히 기도했어요.”

1992년에는 선물로 받은 한 십자가가 그의 마음을 울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공습으로 예배당이 무너진 영국 교회의 것으로, 방패형 흙판에 누운 못 3개가 이룬 십자가 아래 적힌 ‘아버지 용서하소서(Father Forgive)’라는 문장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십자가에 담긴 이야기들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신자들이 모인 독일 한인교회에 94년 초빙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수집을 했다. “십자가는 교회 전통과 역사에 따라 자유와 파격을 담기도 하고, 구원 긍휼 생명 평화 위로 말씀 정의 고백 등 다양한 성경의 주제들을 반영하는데, 모을 때마다 어울리는 성경 구절과 이름을 붙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어요.”

독일에서 이웃 페터 피셔씨가 박물관에서 산 동서독 분단 철조망 다섯 조각으로 만들어준 철조망 십자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기독학생연맹(WSCF)이 만들어 전쟁 종식과 평화 염원하며 군복 깊숙이 품고 다닌 반전 십자가 등이 그의 품에 안겼다.

“개신교인들이 배타적인 편인데, 세계 교회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 데에 십자가 만한 소재가 없더라고요. 교파에는 라벨을 붙일 수 있어도 십자가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하잖아요.”

그에게 부활절을 앞두고 되새겨야 할 십자가 정신을 물었다. “십자가만 내세우고 그 가치는 외면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불편해 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날 많은 한국 교회들이 십자가를 교통표지판 정도로 전락시킨 탓이죠. 십자가를 자랑할 게 아니라 십자가를 짊어진,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희생과 배려를 자랑하는 성숙한 교회가 돼야 해요. 우리 각자가 짊어진,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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