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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목련 입술

입력
2015.04.0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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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살짝 흩날리는 날, 동해안에 다녀왔다. 올해 처음 보는 바다. 파도가 빠르고 높았다. 서울을 떠나기 직전엔 집 근처에서 막 봉우리를 터뜨리려는 목련을 봤다. 아기 주먹 같은 게 연상됐었는데,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그 새하얀 잔상이 줄곧 뇌리에 맺혀 있었다. 어떤 말을 세심하게 궁구하는 내성적이고 사려 깊은 여성의 입술 같다는 생각도 했다. 새하얗고 딴딴한 입술. 흰 색에서 입술을 떠올리는 내 영혼의 색약이 그럴듯하다 여겼다. 목련과 벚꽃이 잠깐 동안 머릿속에서 분별없이 뒤섞인 탓인지도 몰랐다. 여하간, 둘은 같은 시기 피어 사람의 성정에 분내를 묻힌다는 점에서 같은 족속들이니까.

강릉에 도착하니 초저녁 즈음, 가로수의 벚꽃이 만발했다. 숙소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정동진으로 향했다. 바람이 싸늘했다. 빗방울도 여전히 날렸다. 비수기의 관광지는 폐업한 유곽의 여인 같은 면이 있다. 왠지 퉁명스럽고 걸쭉한, 매캐한 삶의 뒷맛 같은 게 느껴진다. 모래사장을 걸었다. 파도가 으르렁거렸고 갈매기 떼가 지분거렸다. 철길 쪽에 서서 수평선보다 백사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잔주름이 균일하게 펼쳐져 있었다. 눈을 떼기 어려웠다. 성욕 비슷한, 물큰한 감정이 올라왔다. 바다의 삶과 모래의 삶을 나눠 생각했다가 둘을 다시 연결시켜보았다. 뭔가 아뜩했다. 이곳은 지구. 삶은 고요하고 빨랐다. 봄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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