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윤ㆍ조용남ㆍ김용중 의기투합, '위대한 탄생' 멤버까지 합세
뮤지스땅스 회원 가입 맹연습
"단독 콘서트ㆍ새 음반 내겠다"… 한국 록의 대부들 결연한 의지
“아니,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요?”
서울 마포구 아현동 대로변 한 건물의 지하에 자리잡은 뮤지스땅스(뮤직+레지스탕스). 인디 뮤지션들이 맘껏 연습하고 녹음할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이 곳에서 지난달 31일 농익은 기타 소리가 흘러 나왔다.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블루스에서 이글스의 컨트리 록,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포크를 넘나드는 내공이 젊은 독립 뮤지션의 감성이라기엔 심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단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연습실에서 여유롭게 합주를 하고 있는 이들은 흰 머리칼 휘날리는 노장의 연주자들이었다.
1969~72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한국 록의 레전드 ‘히식스’가 거기 있었다. 아버지의 미소로 기자를 맞은 것은, 무림의 고수처럼 한가로운 손놀림으로 건반 위에 태풍 같은 파도를 일으키던 유상윤이다. 록 밴드 히식스의 원년 멤버다. 유상윤과 함께 히식스를 결성했던 베이시스트 조용남과 기타리스트 김용중이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6명의 멤버 중 나머지는 미국에 거주(이영덕 권용남)하거나 몸이 좋지 않아(김홍탁) 이 자리에 없었다.
그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심지어 ‘위대한 탄생’이다. 1980년부터 조용필의 명곡의 연주하며 유명 연주자들을 숱하게 배출한 위대한 탄생의 김석규(기타), 변성용(키보드), 이건태(드럼)다. 이들 여섯 연주자의 음악 경력만 모아도 250년에 이른다. 요즘 활동하는 록 밴드가 대선배라고 부르는 연주자의 스승뻘이랄까.
“오늘 드럼과 기타까지 다 함께 맞춰 연습한 게 처음이에요.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기분이 굉장히 좋습니다.”
1970, 1980년대 국내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고수들이 인디 밴드의 연습 공간에 모인 이유가 뭘까. “우리도 이제 인디 밴드야. 허허.”(유상윤) 말인즉슨 옳다. 음반제작사와 계약을 맺고 투자 받은 게 없으니 나이와 상관 없이 인디랄밖에. 변성용이 한국연주자협회에 함께 소속돼 안면이 있던 김정렬 뮤지스땅스 총감독으로부터 뮤지스땅스라는 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으로 회원가입하고 대여 신청을 거쳐 연습 기회를 잡은 것이다.
6명의 음악 취향이나 스타일이 다를 법도 하지만 멤버들은 하나같이 “팀이 먼저”라고 했다. 리더도 따로 없고 선후배도 따지지 않는다. 조용남은 “그룹사운드는 양보가 없으면 못 한다”며 “우리는 그룹만 해온 사람들이라서 서로 양보하고 얘길 들으면서 팀을 운영하는 데는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건태는 “(히식스는) 나한테도 전설인 분들”이라며 “살면서 이렇게 좋은 기회가 다시 없겠구나 생각하며 참여했다”고 말했다.
짧은 전성기 후 김홍탁이 미국으로 가면서 해체된 히식스는 2011년 재결합 공연을 가졌었다. 지방을 돌며 몇 차례 공연을 올렸지만 각자의 생업으로 오래 가지 못했다. “일정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죠. 몇 개월 하다가 깨지고, 또 깨지곤 했어요. 이번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모인 겁니다.”(유상윤)
이번엔 단독 콘서트와 음반까지 내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이들은 ‘파파스’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히식스’가 아닌 것은 원년 멤버가 다 모이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랜드파파스가 아니냐고 놀리는 사람이 있어서” 문제지만. 연주 레퍼토리는 히식스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히식스 1집 머릿곡 ‘초원의 사랑’, 2집 수록곡 ‘물새의 노래’ 등 당시 인기였던 록과 ‘케세라’ 등 칸초네가 포함된다.
전성기 시절의 인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처럼 연주하는 밴드가 없다”는 말에서 자부심만은 넘쳤다. “큰 돈 벌려는 것 아닙니다. 우리 세대가 들을 만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원년 멤버들이 모일 수만 있다면 히식스도 언제든 공연할 수 있어요. 우리처럼 나이 들어서 하는 그룹을 보고 용기를 낼 후배들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유상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