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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세 꼬부랑 골목마다 예술의 숨결 '물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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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세 꼬부랑 골목마다 예술의 숨결 '물씬'

입력
2015.04.0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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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였던 마산 창동 골목이 예술촌으로 부활하고 있다. /창원=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폐허였던 마산 창동 골목이 예술촌으로 부활하고 있다. /창원=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창동은 마산 사람들에게 첫사랑 같은 곳이다. 창원시 도시재생센터 활동가 김경년씨의 표현이다. 부끄럼이 막 피어 오를 무렵 ‘고려당 제과’에서 첫 미팅을 하고, 인근 극장에서 데이트를 즐기며 아련한 추억을 쌓은 곳이다.

창동은 마산의 운명과 닮았다. 마산은 한때 자유수출지역과 한일합섬의 위세로 전국7대 도시로 꼽을 만큼 영광을 누렸지만 2010년 진해와 함께 창원시로 통합됐다. 지금 공식적으로 마산이라는 이름은 합포구와 회원구 앞에 수식어로만 붙어 있다.

마산의 쇠락은 바로 창동의 쇠퇴로 이어졌다. 영화관 은행 다방 술집 등이 밀집해 사람과 돈이 넘쳐나던 창동 골목엔 2000년대 들어 셔터를 내린 가게가 하나 둘씩 늘어났고, 넘쳐나던 유명 브랜드도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도로변 점포는 그나마 명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주인을 찾지 못한 골목 안 가게는 점점 폐허로 변해갔다.

그랬던 창동이 최근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상권 활성화를 위해 도심재생사업에 문화를 불어 넣으면서부터다. 음산한 뒷골목이 공예촌과 예술촌으로 성형수술을 한 것이다.

마산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조각의 거장 문신미술관
마산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조각의 거장 문신미술관
꼬부랑길 벽화마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부림시장이다.
꼬부랑길 벽화마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부림시장이다.

창동예술촌 투어는 문신미술관에서 출발하는 게 좋겠다. 마산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추산동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다. 마산 출신 조각가 문신(1923~1995)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2개의 미술관과 원형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즘이야 흔하지만 당시에는 쉽지 않았던 스테인레스 작품이 미술관 안팎에 자리잡고 있다. 제작과정에서 대칭이 조금씩 어긋나기도 했는데 작가는 그것마저 생명의 원리로 받아들였다.

미술관 바로 아래 골목을 돌면 꼬부랑길 벽화마을이다. 규모는 작지만, 달동네 주민들의 고단함이 베어있는 담벼락이 마산의 명소를 두루 품고 있다. 벽화마을에서 좁고 가파른 골목을 따라 약 350m 곧장 내려오면 부림지하상가다. 지하도를 건너면 왼편이 창동통합상가 오른편이 부림시장이다. 명칭은 구분돼 있지만 실제로는 붙어있다.

경남 최대 포목 예단 시장인 부림시장의 빈 가게엔 30여 개의 공예촌이 자리잡았다. 토기와 한지, 천연염색과 목공예 등 종류도 다양한 작은 공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공모를 통해 입주한 장인들이 생활 공예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각종 체험프로그램과 강좌도 열고 있다.

셔터를 내렸던 부림시장 가게엔 공예촌이 들어서고...
셔터를 내렸던 부림시장 가게엔 공예촌이 들어서고...
폐허로 변했던 창동 골목은 예술촌으로 거듭났다.
폐허로 변했던 창동 골목은 예술촌으로 거듭났다.

창동예술촌은 마산조창터에서 출발한다. 조선시대 세곡을 거둬 보관하던 조창 (漕倉)이 있던 곳으로 창동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 지금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자리잡고 있다. 조창이 있던 당시엔 마산 앞바다가 코앞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창동예술촌은 이곳에서 창동거리길을 따라 오르다 양편 골목으로 퍼져있다. 왼편은 문신예술골목, 오른편은 마산예술흔적골목이다. 슬럼이었던 골목이 파스텔톤 페인트로 화사하게 단장했다. 화장실이었을 법한 허름한 공간은 낚싯대 드리워진 포토존이 되고, 구멍가게 자리였을 자투리땅은 지친 다리 쉬어가는 간이 쉼터가 되었다. 조금이라도 허전한 틈은 315개의 깡통화분이 메웠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해 들고 일어난 3.15의거 발원지임에 착안한 발상이다. 1979년 유신독재에 항거한 부마민주항쟁의 발원지도 이곳이었다니 마산의 자부심이 골목마다 빼곡하다.

최고 250년이나 된 골목 곳곳에 공모를 통해 입주한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었다. 마산을 대표하는 중견화가의 작업실과 갤러리, 공연장과 음악교실, 영상스튜디오와 만화방까지 문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들은 빠짐없이 모였다. “작은 가게여서 경쟁력이 없다고 하지만 다양성이 넘치는 특별한 장소로 키워나가고 싶다”는 게 김경년씨의 포부다. 학생들을 상대로 진로체험과 골목 투어를 실시해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넘치고 카메라를 든 관광객의 발길도 늘어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마산 부림시장 6.25떡볶이는 한끼 식사로도 거뜬하다.
마산 부림시장 6.25떡볶이는 한끼 식사로도 거뜬하다.

골목골목 발 품을 팔다 보면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부림시장엔 6.25떡볶이가 유명하다. 한국전쟁 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낮은 의자에 피난민처럼 빙 둘러 앉아 떡볶이를 먹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이름이다. 국물과 어묵이 많아 한 끼 때우기에도 부족하지 않다. 창동예술촌 골목엔 고려당 제과가 유명하다. 황금당 금은방, 학림당 서점과 함께 창동의 3당으로 꼽힌다. 고려당에선 크림을 듬뿍 넣은 ‘버터크림빵’이 유명하다.

마산엔 음심으로 특화된 거리가 여럿이다. 창동과 이웃한 오동동에 통술집과 아귀요리 전문점, 복 요리 음식점이 밀집해 있다. 통술은 일일이 주문할 필요 없이 가격만 말하면 정해진 요리가 차례로 나오는 식이다. 술값만 별도다. 합포로를 중심으로 복 요리 음식점은 마산만 쪽에, 통술집과 아귀요리 전문점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구 도심이라 복잡하지만 도로명 주소를 아예 ‘아구찜길’과 ‘복요리로’로 붙여 외지인이 찾기도 어렵지 않다. 최근에는 두월동 ‘신마산 통술거리’에 오동동보다 더 많은 통술집이 성업 중이다.

창원=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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