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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협상의 법칙

입력
2015.04.0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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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협상 속에 생활한다. 지난 주말 오후 살림만 하는 아내를 지켜보니 2시간 만에 3가지 협상을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초등학생 큰 아들이 손흥민이 출전하는 독일 분데스리가 경기를 보겠다고 하자 숙제를 마치기 전에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숙제를 마치는 시간이면 경기가 끝난다, 어차피 녹화방송이다 옥신각신하다 결국 숙제의 일부를 마치고 후반전을 시청하기로 했다. 아내를 똑바로 쳐다보고 할 말 다하는 아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아직 어리니까 아내가 봐준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아내는 저녁거리와 과일을 같이 사러 가자고 했다. 주변에서 싸다고 소문난 가게인데도 아내는 과일들을 살피며 뭘 더 얻어가려 했다. 젊은 가게 주인은 앓는 소리를 내지만 미소를 지으며 협상에서 양보한다. 집에 돌아오니 이번에는 둘째 아들이 아내에게 갖은 아양을 떨며 자전거를 타러 가겠다고 엄마를 조른다. 아내는 미세먼지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데 둘째는 드러누워 막무가내다. 둘째가 이길 것 같았다. 이전에도 둘째가 끈질기게 치근대면 아내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이 지쳐가다 협상에서 양보하곤 했다.

살아가며 나름대로 자신만의 협상의 법칙을 터득한다. 서로가 한발씩 양보하는 아내와 큰 아들의 지혜, 칼자루를 진 상대에게 웃으며 물러서지만 자신의 핵심이익은 지켜내는 가게 주인의 상업전략,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둘째 아들의 근성 등 각자의 목표를 위해 나름대로 터득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협상에 사용한다.

눈을 돌려보니 최근 한국 외교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의 한국 내 배치문제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부는 한국 외교에 만족해하는 표정인 반면, 전문가들과 언론은 연일 비판과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주요 걱정 중 하나는 ‘우유부단한 외교’에 있다. 작년 7월 방한 당시 시진핑 주석은 한국의 AIIB 가입을 권고했다. 한국은 미국의 반대 입장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헌데, 이후 ‘신중’을 넘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다. 막바지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가입이 없었으면 한국은 눈앞의 경제이익을 바라보기만 하며 결국 ‘실기(失期)’했을 것이다.

왜 우유부단했던가를 살펴보면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분석과 외교 전략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다. 미국이 한국의 AIIB 가입을 반대한 이유는 한국이 중국에게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다. 향후 중국이 AIIB에 이어 브릭스 국가들과 함께 신개발은행(NDB), 위기대응기금(CRA) 등을 건립하며 미국이 만든 국제금융질서에 도전할 것에 대한 우려가 우선이었다. 영국은 미국과 협의해 AIIB 밖에서는 현재의 미국 국제금융질서에 따라 이를 관리 감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우려를 부분적으로 해소하고 자국의 실리도 보호하였다.

사드에 대한 중국의 우려 또한 사드 그 자체보다는 이를 시작으로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한미일 미사일 방어시스템, 나아가 궁극적으로 한미일 지역안보협력체제가 확립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사드 자체에 대한 한국 측의 ‘기술적 배려’나 북한 핵위협에 대한 한국의 자구책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중국은 사드가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의 시작점인가 아닌가를 분석하고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중의 압력은 정확한 정세분석과 분명한 목표만 선다면 아직은 한국이 이겨낼 수 있는 상황에 있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잡아온 것은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균형을 위해 국익을 줄이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국익 확대를 위해 일시적으로 균형이 깨어지더라도 정세에 따라 ‘원칙’이 ‘아집’이 되는 것을 막는 양보의 지혜, 크게 멀리 보는 외교전략, 가능성에 도전하는 끈질긴 근성의 외교협상이 필요하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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