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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화장vs장수상회… 어제의 동지, '적'된 얘기

입력
2015.04.0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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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엔 끝이 '끝'이 아닙니다. 뒤끝뉴스는 취재 그 뒷이야기, 기사 그 다음 스토리를 전합니다.

영화 '화장'(왼쪽)과 '장수상회'. 두 영화는 많은 제작 뒷얘기를 낳고 있다.
영화 '화장'(왼쪽)과 '장수상회'. 두 영화는 많은 제작 뒷얘기를 낳고 있다.

영화 ‘화장’과 ‘장수상회’가 9일 흥행 맞대결을 펼칩니다. 한국영화계의 거목 임권택 감독과 흥행의 제왕이었던 강제규 감독의 대결은 호사가들을 자극할 만합니다.

①'전관예우'가 필요?

충무로 일각에서는 대선배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는 말도 나옵니다. 임 감독의 102번째 영화인 ‘화장’이 관객들과 원활하게 만나기 위해서는 강 감독이 개봉을 당기거나 미뤘어야 한다는 지적이죠. 4년 전 임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가 개봉했을 때 충무로 빅3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공동배급을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노 대가의 영화를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었던 것이지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냉혹하기만 한 흥행전선에서 ‘전관예우’가 필요하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봐주기’ 개봉은 오히려 대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누구의 말에 손을 들어주게 되든 두 영화의 맞대결을 보려니 조금은 착잡한 기분이 듭니다. 충무로에 남아있던 의리와 낭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서입니다.

‘화장’과 ‘장수상회’의 대결은 겉으로는 임 감독과 강 감독이 맞서는 모양새이나 뒤를 보면 간단치 않은, 또 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한 지붕 아래에서 풍운을 꿈꾸었다가 이별한 뒤 의도치 않게 오늘의 적이 된 영화인들의 이야기입니다.

②동지였던 강제규필름과 명필름

강 감독은 잘 알려졌듯이 2003년 ‘태극기 휘날리며’로 ‘실미도’와 함께 1,000만 관객 시대를 엽니다. 2006년 ‘왕의 남자’에게 흥행왕좌를 내주기까지 역대 최다 관객 영화 타이틀을 보유하게 됩니다. 강우석 감독과 ‘양강’체제를 구축하며 충무로를 호령했습니다. 이 즈음 강제규 감독은 ‘충무로의 품질보증마크’로 통하는 명필름과 손을 잡게 됩니다. 1995년 창립한 명필름은 많은 화제작들을 쏟아낸 단단한 영화사입니다. ‘접속’과 ‘바람난 가족’ ‘와이키키 브러더스’ ‘섬’ ‘해피엔드’ 등을 내놓았고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흥행작도 선보였습니다.

임권택(왼쪽) 감독, 강제규 감독
임권택(왼쪽) 감독, 강제규 감독

강 감독의 영화사 강제규필름과 명필름은 2004년 살림을 합치기로 결정합니다. 두 영화사는 수공구회사인 세신버팔로와 합병을 해 MK픽쳐스로 거듭나고 증권시장에 우회상장하기도 합니다. 최고흥행 감독과 명문영화사의 의기투합이었으니 충무로에 지각변동 경보를 일으킬 만도 했습니다. 명필름의 공동대표인 이은 감독은 강 감독과 중앙대 영화학과 동기입니다.

MK픽쳐스 출범이후 강 감독은 할리우드에 머물며 세계 시장 진출을 모색했습니다. 최근 한국일보와 만났을 때 강 감독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30~40편 정도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이 중 아무 것이나 만들어 보라 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강 감독의 꿈은 컸습니다. 할리우드의 고용직 감독이 되는 대신 자신의 오랜 프로젝트인 공상과학영화 ‘요나’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4년을 할리우드에 머물렀으나 강 감독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강 감독은 “그 때 처음부터 욕심내지 말고 그들이 원하는 영화 한 두 편 하고 내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옆에서 조언을 해줄 좋은 프로듀서가 있었으면 내 고집을 꺾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강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고투하는 동안 MK픽쳐스도 험로를 걷습니다. 10ㆍ26사건을 다룬 ‘그때 그사람들’로 논란의 중심에 섰으나 흥행에선 별 재미를 못 봤습니다. ‘광식이 동생 광태’와 ‘안녕 형아’는 관객의 호응을 받았으나 ‘아이스케키’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구미호가족’ ‘사생결단’ ‘등이 흥행에서 쓴 잔을 들이마시게 됩니다. 상장회사로서 실적에 대한 압박에 시달립니다. 강제규필름과 명필름은 예정된 수순처럼 결별하게 됩니다.

2007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신호탄으로 명필름은 독립을 합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과 ‘마당을 나온 암탉, 싹’ ‘건축학개론’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건재를 과시합니다. 강 감독은 한국에서 ‘마이웨이’ 프로젝트로 자기의 길을 걷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화장’의 제작사는 명필름입니다.

'화장'의 리틀빅픽쳐스 vs '장수상회'의 CJ엔터테인먼트? 리틀빅픽쳐스가 지난해 투자배급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한 장면. 당시 리틀빅픽쳐스는 CJ엔터테인먼트가 영화 ‘국제시장’으로 스크린을 독과점하면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정당한 상영기회를 뺏었다고 비판했다.
'화장'의 리틀빅픽쳐스 vs '장수상회'의 CJ엔터테인먼트? 리틀빅픽쳐스가 지난해 투자배급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한 장면. 당시 리틀빅픽쳐스는 CJ엔터테인먼트가 영화 ‘국제시장’으로 스크린을 독과점하면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정당한 상영기회를 뺏었다고 비판했다.

③투자배급사 힘겨루기 2라운드?

‘화장’과 ‘장수상회’의 투자배급사 면면도 이번 대결에 시선을 모으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화장’의 투자배급사는 리틀빅픽쳐스로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인 이은 대표의 주도로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에 맞서 불공정한 업계 관행을 바로잡겠다며 2013년 출범했습니다. 지난해 이른바 ‘개훔방’ 논란을 일으킨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투자배급사도 리틀빅픽쳐스입니다. 리틀빅픽쳐스는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한 영화 ‘국제시장’이 스크린을 독과점하면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정당한 상영기회를 뺏었다고 비판했습니다. CJ엔터테인먼트로서는 리틀빅픽쳐스를 좋게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리틀빅픽쳐스에 대한 반감 때문에 ‘장수상회’를 ‘화장’과 맞붙게 했다는 해석이 충무로에서 나오는 이유입니다. ‘화장’의 개봉일 확정 뒤 ‘장수상회’가 뛰어들어 이런 추정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10여년 전 살림을 합쳤던 명필름과 강 감독이 맞대결을 펼치게 됐으니 참 얄궂은 운명입니다. 강 감독은 “흥행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고 하나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전작 ‘마이웨이’가 흥행 참패를 했으니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닙니다. 명필름도 최근작인 ‘관능의 법칙’이 흥행 부진을 보여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필사적인 대결은 아니어도 패자에게 꽤 큰 후유증을 남길 대회전입니다.

승패 결과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궁금증이 일기도 합니다. 어제의 동지였다가 오늘의 적이 된 명필름과 강 감독은 앞으로 또 어디서 어떻게 조우하게 될까요? 충무로도 이젠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정글의 법칙만이 적용되는 살벌한 곳이 된 걸까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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