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주로 집 근처 천변이나 잘 아는 동네의 골목들을 하릴없는 걷는 편이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날수록 걸음은 빨라진다. 땀이 흐르고 호흡이 가빠질 때쯤이면 눈에 띄는 아무 데나 걸터앉아 숨을 고른다. 그때 내 몰골은 많이 지쳐 보인다.
몸을 많이 쓰는 운동을 하고 싶고 건강을 위해서라도 꼭 그래야 하는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 되도록 많이, 빨리 걸으려고 하는 것이다. 장딴지 근육이 뻣뻣하게 올라오고 발바닥이 아려오기 시작할 때의 다소 혼곤한 느낌을 일부러 즐기는 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이 살짝 낯설어지기도 한다. 몸의 구동이 일상적인 패턴을 잠깐 벗어나는 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오묘한 자기소외의 순간. 나는 ‘약간 다른 나’가 된다.
누구는 달리기를 하면 그걸 더 크게 느낄 수 있지 않겠냐고 조언하기도 한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달리기는 애초에 작정하거나 목적하는 바가 너무 분명해 몸의 변화가 걷기처럼 자연스럽고 점차적이지 않다. 무대에 설 때가 아닌 한, 의식적인 모드 전환은 내겐 불편한 일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걷길 원할 뿐이다. 바르게 걷고 정확하게 말하고 몸이 알아서 스스로를 풀어놓는 것에 일체의 판단도 조장하지 않는 일.
긴 산책을 하게 되었다. 눈부터 비벼본다. 익히 아는 것들의 다른 얼굴을 볼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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