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어디나 비슷비슷한 이름을 가진 아파트가 참 많다. 이 단조로운 풍경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언젠가 인구가 줄고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하면 이 거대 도시는 공동화를 겪을 것이다. 도심 슬럼화가 어렵지 않게 예상된다. 당장에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해선지 최저가 분양을 광고하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집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집이 없어 고민이다. 전세란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장기 임대 형식의 주거지를 공략하라는 조언이 아침방송을 타고 흘러나오는 게 들렸다. 저 많은 집들의 주인은 다 누구인지, 왜 나의 집은 없는지 그런 속된 질문을 던져 본다. 그건 어리석고 한심한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주택지구가 좀 오래 되었다 싶었는데 얼마 전 지나다 보니 세입자들이 다 빠져나가고 허물기 시작했다. 벽돌이 깨져 흩어지고 철근이 삐죽거리며 드러났다. 대문이 사라지고 지붕이 뜯긴 집들은 흉물스러워 보였다. 주인들은 쾌재를 부르고 세입자는 눈물을 머금었을까. 주인들도 얼마간 챙겨서 나갔지만 여전히 곤궁한 삶을 면하지 못했을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이곳에서 누추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쫓기듯 빠져나가고 새 단지가 들어섰을 것이다. 쾌적하고 조용한 아파트는 종종 너무 고요해서 무덤 같은 삶에서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주고는 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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