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풍선과 대북전단 살포 등
표현의 자유에 이중적 태도 보여
독립기관 되려면 헌법 기구 돼야"
장명숙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사명감이 없이 버텨낼 수 없던 3년이었다. 무사히 임기를 마친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차관급)으로 일했던 3년의 시간이 그만큼 가시밭길이었다는 소회였다. 이달 15일 퇴임한 그를 25일 경기 광명시 자택에서 만났다. 장 전 위원은 2012년 3월 야당 추천을 받아 대통령 임명직인 상임위원에 오른 이후 줄곧 인권위 내 쓴소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인권위의 바닥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며 추락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예견됐던 ICC 등급 보류
인권위는 27일 ‘국가인권기구 간 국제조정위원회’(ICC)의 등급 심사에서 세 번 연속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다. 여전히 인권위원을 투명하게 선출할 수 있는 구속력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장 전 위원은 이를 예견된 결과라고 했다. “ICC에서 인권위가 마련한 위원 선출 가이드라인이 구속력이 없다고 지적했으면 법으로 반영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법을 제대로 안 고쳤어요. 실질적인 개선이 안 이뤄진 거죠.” 인권위법 개정안에 인권위원 선출 절차를 공개하는 내용을 담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위원 선출기관의 재량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빠졌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선출기관에 모든 권한을 위임한 결과 11명의 인권위원 중 7명이 법조계 출신”이라며 “인권위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사회적 약자임을 감안하면 인권위원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위원 구성이 획일적이다 보니 안건을 다룰 때마다 법의 잣대로 인권의 가치를 재단하려는 시각이 많아졌다”고 한다. 장애인 출신 위원도 장 전 위원(지체장애 4급)이 인권위를 나오면서 사라졌다. 전체 차별사건 가운데 장애 관련 사건이 절반을 넘지만, 장애인을 대변해 진정 내용을 섬세하게 다룰 여지가 줄어든 것이다.
끝없는 추락… 바닥은 없었다
장 전 위원은 인권위에 쏟아지는 비판이 당연하다고 했다. 권력기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인권위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는 “인권위는 태생적으로 정부가 듣기 거북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에 쓴소리 하기를 주저한다”고 꼬집었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이중적 태도가 대표적이다.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한 시민단체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풍선을 날리려다 경찰 제지로 무산된 것에 대해서는 침묵했으나,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냈다.
“풍선 날리기는 누가 봐도 표현의 자유 영역인데 한사코 입을 다물다가 뜬금없이 대북전단 살포에 입장을 표명하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지요.” 인권위는 또 간혹 실탄이 떨어지기도 하는 휴전선 접경 지역에서 전단 살포는 괜찮다고 했다가, 밀양 송전탑 반대 집회는 안전을 내세워 경찰의 통행 제한 조치가 적법하다며 앞 뒤가 안 맞는 결정을 반복했다.
인권위 제 역할 하려면 정부 통제 벗어나야
그의 인권위 활동이 항상 ‘한계상황’에 놓여 있던 것은 아니다. 장 전 위원은 지난해 업무수행 중 파손된 의족에 대해 요양급여를 인정할 것인가를 놓고 대법원의 ‘급여 지급’ 판결을 이끌어 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장애인들에게 보장구(具)는 자기 몸과 같아요. 기구가 살갗에 닿으면서 피가 나는 과정을 거쳐 몸의 일부가 되는 건데 ‘의족은 생물학적 다리와 같다’는 판결이 나와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인권위가 진정한 독립기관으로 거듭나려면 헌법기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전 위원은 “진정사건 이외 상임위와 전원위에서 다루는 안건은 위원장 결재가 나지 않으면 열람조차 할 수 없다”며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위원장이 인사권까지 틀어쥐고 있는 탓에 조직이 휘둘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을 이끌었던 장 전 위원은 당분간 여행을 하면서 향후 인권 발전을 위한 고민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인권위 안에서 조직의 추락을 지켜보는 게 외롭고 고통스러웠지만, 혼자 올 수 있던 길은 분명 아니었어요. 그 길을 묵묵히 지지해 준 구성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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