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최근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금지하는 내용의 고강도 절주(節酒)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나섰지만 시행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이 전제돼야 하는데,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법 개정 작업이 더딘 까닭이다. 술과의 한판 전쟁을 벼르는 서울시의 결기와 달리, 복지부의 속내는 다소 복잡해 보인다. 연초 담뱃값 인상 카드를 꺼내 들며 ‘담배와 전쟁’을 치른 복지부로서는 또 다른 전쟁에 뛰어들 추진 동력 확보가 쉽지 않다.
술과의 전쟁에 임하는 서울시의 전의(戰意)는 뜨겁다. 서울시 건강증진과 건강정책팀 관계자는 “우선 공공장소에서 음주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구체 방안을 밝혔다. 서울시의 또 다른 관계자는 “보건복지부가 공공장소에서 음주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절주 관련 조례를 제정할 것”이라고 복지부를 압박했다.
술과의 전쟁에 나설 명분은 상당하다. 통계로 본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주도(酒都)로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2013년 기준 서울시민 10명 중 6명이 월 1회 이상 술을 마시며, 시민의 17.5%는 고위험음주군이다. 대한보건협회가 2012년 서울과 5개 광역시를 조사한 결과, 공원에서 음주행위를 한 비율은 자그마치 58.2%에 이른다.
중독포럼 등 관련 단체들은 “미국, 캐나다. 영국처럼 공공장소에서 음주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공공장소에서 주류를 소지하거나 혈중알코올농도가 0.08% 또는 0.10% 이상 주취 상태인 사람은 경범죄로 체포, 최고 500~1,000 달러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가장 강력한 절주 대책을 추진하고 있는 뉴욕주의 경우 공원에서 개봉한 술을 소지하기만 해도 25불 이하 벌금 또는 5일 이하 징역에 처한다.
캐나다에서는 퀘벡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공공장소에서 술을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영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음주가 불법은 아니지만 경찰이 음주지시를 내리면 바로 음주를 멈추고 모든 술을 버려야 한다. 영국은 형사법 및 경찰법에 근거 ‘공공장소지정법’을 제정해 공공장소에서의 음주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주취 행위 단속은 더 엄격해 공공장소에서 이 같은 행위를 하면 ‘무질서 행위’로 간주해 영장 없이 체포가 가능하다.
앞서 복지부는 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거나 판매하는 행위 금지 ▦주류광고 금지 매체 및 광고내용 규제 확대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자체적으로 절주 정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국민건강증진법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구체화 된 것은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 해 대통령업무보고에서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거나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절주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국민건강증진법 개정 등 구체계획이나 일정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서울시가 절주 대책을 마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시는 2012년 공원(2,600여 곳)에서 음주행위를 할 경우 5만~7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하는 내용의 ‘공원 금주지역 지정’을 추진했지만 법적 근거 미비로 무산됐다. 서울시의 술과의 전쟁은 이번에도 고독한 행군이 될까.
김치중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