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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요란한 사정

입력
2015.03.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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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를 필두로 한 검찰발 대기업 사정이 동부그룹 등 전방위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과거부터 사정 당국의 내사를 받아오던 일부 기업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에 부정부패 척결 차원의 대규모 수사가 시작되자 해당 기업 관계자들은 경제상황이 가뜩이나 어려운 마당에 사정의 칼끝이 다방면으로 확산되는 듯한 모양으로 전개되자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다. 사진은 17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 본사 사옥의 모습으로 희뿌연 연무가 가득한 가운데 빨간색 경광등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포스코를 필두로 한 검찰발 대기업 사정이 동부그룹 등 전방위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과거부터 사정 당국의 내사를 받아오던 일부 기업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에 부정부패 척결 차원의 대규모 수사가 시작되자 해당 기업 관계자들은 경제상황이 가뜩이나 어려운 마당에 사정의 칼끝이 다방면으로 확산되는 듯한 모양으로 전개되자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다. 사진은 17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 본사 사옥의 모습으로 희뿌연 연무가 가득한 가운데 빨간색 경광등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부패척결’은 누구도 토 달 수 없는 과제이고, 정상적 정부라면 의당 해야 할 책무다. 그러나 이 당연한 명제의 현실적 정의를 묻는다면, 아마도 수십 가지 답변이 나올 것이다. 정치인이라면 필시 부패척결을 ‘권력누수방지’와 동일시할 테고, 공무원들은 ‘군기잡기’로 해석할 것이며, 경제인들은 ‘경기위축’을 먼저 얘기할 게 확실하다.

사실 권력의 모든 행위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기침소리까지도 정치적 행위다’란 말도 틀리지 않다. 하물며 집권 3년 차에 정부가 갑자기 부패척결을 외치고, 같은 시기에 검찰의 대기업 및 지난 정부 주요인사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면 거기엔 필시 뭔가 정치적 배경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게 눈엣가시 같은 친이계를 겨냥한 것이든, 느슨해진 친박계를 단속하기 위한 것이든, 통틀어 내년 총선을 대비한 누수방지 프로그램이든 말이다. 혹은 투자 늘려달라, 고용 늘려달라, 임금 올려달라며 정부가 거의 읍소를 하고 있는데도 협조는커녕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재계를 겨냥한 것일 수도 있겠다.

사정(司正) 앞에 떠는 곳이 한둘은 아니겠지만, 가장 취약한 곳은 대기업이다. 재벌의 사정수난사는 이루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옛 비리가 많았던 탓도 있지만, 맘 먹기에 따라 대기업만큼 손쉬우면서도 사정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타깃이 없다는 뜻도 된다.

재벌은 아니지만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포스코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고, 검찰수사리스트에 다른 기업들 이름이 여럿 오르내리면서 재계는 이번에도 긴장과 불만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과거 사정국면 때마다, 혹은 반(反)대기업 정책이 전개될 때마다 나왔던 논리, ‘한쪽으론 경제 살리기를 얘기하면서 기업수사를 확대하는 게 이율배반 아니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실 이 항변이 꼭 틀린 건 아니다. 물론 원론적으론 부패 없는 투명한 경제가 훨씬 지속 가능한 게 맞지만 현실에선 정부의 부패척결, 기업사정이 경제위축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일단 사정기류가 형성되면 기업들은 꼭 은밀한 검은 지출뿐 아니라, 그냥 정상적인 씀씀이도 줄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확실히 당장의 내수에는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10여 년 전 접대비한도축소 조치가 나왔을 때나, 경제민주화 드라이브가 한창일 때, 또 각종 사정성격의 기업수사가 진행될 때, 호텔 식당 골프장 매출이 크게 줄었던 전례도 있다. 대중정서엔 다분히 거부감을 줄 수 있는 표현이지만, ‘너무 맑은 물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이치가 현실경제에선 어느 정도 사실이다.

부패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관공서에서 도장하나 찍는데 몇 주씩 걸리는 낡은 체제에선 ‘급행료’같은 소액 부패는 오히려 행정절차를 단축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행정학 이론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민소득 1만 달러 이하의 저개발국가 얘기지 선진사회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선 절대로 귀담아 들을 얘기가 아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이 궁극엔 부패 없는 투명한 경제가 훨씬 높은 성장, 공평한 분배를 안겨줄 것이다. 부패는 반드시 척결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정부의 사정활동도 멈춰선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식은 곤란하다. 사정 그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경제사회적 비용 때문이다. 지금대로라면 올해 내내, 아마도 내년까지 경제는 성장률 3% 초반의 힘든 국면이 이어질 텐데, 경제계는 아마도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을 정부의 ‘기업 옥죄기’ 탓으로 돌릴 것이고 시간이 흐를 수록 사정은 탄력을 잃어 흐지부지되고 말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 부패근절 앞세운 사정들이 늘 일회성 이벤트로 끝난 것처럼 말이다. 요란한 사정은 결국 역풍을 자초해 스스로 무력화되고 만다.

이번 사정이 고도의 정치적 노림수를 가진 거라면 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정말로 비리를 뿌리 뽑고 싶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달리 해야 한다. 총리가 나설 것도 없고 사정기관이 모여 공개적 회의를 가질 것도 없다. 그냥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하면 된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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