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규모 기준 땐 다소 불리
IMF처럼 교역량 등 가중치 유도해야
北ㆍ러 접경 개발 등 자금 유입되게
부총재직ㆍ이사국 상주화도 긴요
큰 관문은 넘었다. G2(미국ㆍ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좌고우면한 것과 달리 큰 잡음 없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쟁쟁한 가입국 사이에서 최대한 높은 지분율을 확보하고, AIIB의 막대한 자금력을 동북아로 끌어들이는 방안을 한국 정부가 강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6월 협정문 서명 때 결정되는 AIIB 자본금의 한국 지분율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지분율 크기가 곧 AIIB 내 영향력을 좌우하고, 이것이 경제 효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이사회가 어떤 사업 프로젝트를 어느 나라에 줄 지 결정하는 AIIB의 특성상 프로젝트를 획득한 나라가 사업 발주 과정에서 이사회 결정 권한이 큰 나라를 위주로 낙찰을 받게 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분율은 경제 규모를 바탕으로 결정한다는 게 현재 AIIB의 기본 방침. 통상 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으로 측정되는데, 지난해 한국의 GDP는 1조4,495억 달러로 AIIB에 가입한 역내 국가 가운데 중국(10조3,354억 달러) 인도(2조478억 달러)에 이은 3위다. GDP가 한국보다 약간 높은 호주(1조4,835억 달러)가 가입할 경우 한국은 4위로 밀려난다. 이에 대해 한 외교부 당국자는 “GDP로 계산해보면 우리 지분율은 5% 전후, 중국은 30% 정도가 될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에 유리한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GDP를 산정하면 더 불리해진다. 중국ㆍ인도와 우리나라의 격차가 7~17배로 크게 벌어지는 것은 물론 일반 GDP 기준으로 한국에 뒤지는 인도네시아(2조5,543억 달러)가 한국(1조7,898억 달러)을 두 배 가까이 앞지르게 된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13년 10월 AIIB 설립을 최초 제안한 국가로 부총재 자리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처럼 지분율 산정 시 교역량, 외환보유액 등에 가중치를 두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역내 국가의 지분율을 높여 유럽 국가들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각도 많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은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 큰 것은 물론, 정보통신(IT)기술이나 건설 경쟁력이 높아 인프라 건설 입찰에서 한국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AIIB에서는 역내 국가의 전체 지분율 비중을 70~80%정도로, 역외 국가의 지분율은 20~30%정도로 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역내 지분율 비중을 80%로 하면 한국이 약 6%의 지분을 얻을 수 있지만, 70%로 하면 지분율은 5% 내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1,000억 달러(약 110조원)로 예정된 AIIB의 막대한 돈 줄기를 동북아로 향하게 하는 것도 숙제다. 현재 AIIB 주도국인 중국의 주요 관심은 동쪽보다는 서쪽에 쏠려있다.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하는 이다이이루(一帶一路) 프로젝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게 대표적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AIIB 자금의 일정 부분을 북한 등 동북아 인프라 개발에 쓰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필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은 “서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자금을 동쪽으로 끌어와 우리와 밀접한 북한ㆍ러시아 접경지대 개발,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등 동북아 개발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오정근 학회장도 “남북 통일 시 들어갈 막대한 개발 자금을 AIIB에서 동원할 수 있도록 미리 협의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중국이 AIIB총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한국의 부총재 지위 획득 여부도 관심사다. 부총재 자리 수는 올해 말 출범 때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지만 현재 IMF에 4개, 아시아개발은행(ADB)에는 6개의 부총재 자리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부총재직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사국을 상주 체제로 운영하는 방안을 관철시키는 것도 한국 정부의 과제다. AIIB 사무국을 틀어쥔 중국은 다른 이사국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非)상주 이사국 체제를 선호하지만 상주 이사를 사무국에 파견해 지속적으로 발언권을 행사하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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