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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학교가 슬픈 아이들

입력
2015.03.2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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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오래 다닌 탓일까. 한 해의 진짜 시작이 1월이 아니라 3월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면서 산다. 올해는 주변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둔 지인들이 유난히 많은 까닭에 3월 새 학기의 흥분을 간접적으로나마 더 자주 느낄 수 있었다. ‘워킹맘’과 ‘전업맘’이라는 두 길 사이에서 오래 고민하다가 아이의 입학과 함께 육아휴직에 돌입한 친구가 있다. 그녀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이 혹시 잘 못 챙겨줘서 초등학교 1학년에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면 아이가 또래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두렵다고도 했다.

아직 경험이 없는 나는 자못 비장하기까지 한 그 초보 학부형의 말에 어떤 의견도 피력하지 못했다. 얼마 전 친구는 아이가 학교 교문을 배경으로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있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 ‘갈 길이 멀고 멀지만 우리 같이 화이팅!’이라고 그녀가 직접 적은 문장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갈 길이 멀다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은 것은 나도 곧 학부형이 될 처지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인 나 역시 만 7세부터 걸어온 그 ‘학교의 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오랜만에 다니엘 페낙의 에세이 ‘학교의 슬픔’을 꺼냈다. 다니엘 페낙은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 등이 포함된 말로센 시리즈와 지적인 에세이 ‘소설처럼’으로,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갖춘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지식인이다. 수십 년 동안 교사로도 일했다. 그런 작가에게는 반전이 하나 있는데, 실은 학창시절 엄청난 열등생이었다는 것이다. 열등생과 교사라는, 학교 내의 상반된(!) 계급을 모두 경험한 자만이 쓸 수 있는 책이 바로 ‘학교의 슬픔’이다.

그는 책의 많은 부분에서 어린 시절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못했는지 생생하게 고백한다. 그는 심각한 이해력 결핍과 철자 습득 장애를 가졌고 성적은 늘 반에서 꼴찌나 바로 그 앞이었다. 알파벳 A를 외우는데 꼬박 일년이 걸렸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지난한 열등생 시절의 경험으로 페낙은 이렇게 말한다. ‘쓰레기통의 이미지는 학교생활에 실패한 학생이 느끼는 쓰레기 같은 감정에 꽤 어울린다. (중략)두려움은 분명 내 학창시절 내내 나의 가장 큰 문제였고 장애물이었다.’ 그는 교사가 된 이후 자신의 급선무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두려움을 치료하고 방해물을 치워버려 앎이 스며들 기회를 가지도록 돕는 것이라 믿었다.

학교가 공부를 가르치는 곳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성적’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로 간주된다. 뒷줄에 서는 아이, 평균에 비해 학업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에게는 열등생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열등생에게 학교는 고통스럽고 슬픈 곳이다. 자신이 열등한 존재일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좌절감을 끝없이 되새겨야 하는 장소를 좋아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에.

그런 측면에서 사랑하는 아이를 이제 막 대한민국 공교육의 장에 집어넣은 학부모의 불안한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경험상 그들은 한국의 학교야말로 성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아이에게 가차 없는 낙인을 찍는 곳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만약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면 학교 안에서 공공연한 상처를 받을 것이 분명한데, 시스템은 좌절감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문제 같은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일종의 각개격파법 혹은 예비대응책을 마련한다. 그것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사교육과 선행학습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어쩌면 강해지고 싶어 강해지려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강해지는 방법밖에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보낸 아이들의 첫 3월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친구에게, 그래도 우리부터 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 책을 함께 건네야겠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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