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아나키즘적 움직임이나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는 지금이나
개인이 지닌 예술·창조성에 집중
20세기 초 일본 와세다대 이공학부 교수인 곤 와지로는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쿄 거리의 모든 풍경을 기록했다. 기록의 대상은 사람들의 걸음걸이, 기댄 모습과 앉은 모습, 수염의 모양과 길이, 노점의 배열과 구성, 어부의 일하는 모습과 쉬는 모습, 심지어 공원의 자살 장소 분포도까지 그야말로 마구잡이였다. 기행에 가까운 연구활동에 대해 곤 와지로는 지진 이후 ‘객체적인 현대생활’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도쿄 긴자 행인들의 수염을 스케치한 자료를 보면 연구의 목적이 ‘규명’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개체의 특성을 그대로 기록함으로써 규명의 필수조건인 일반화 혹은 범주화에 관심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외적인 규제, 즉 기성 가치의 간섭 없이 모든 개체를 각자 하나의 범주로 끌어올리는 이런 작업은 대지진으로 인해 원시로 돌아간 도쿄 거리, 그리고 20세기 초 일본 사회 전반에 흐르는 대전환의 사조 위에서 가능했다.
구라카즈 시게루의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은 20세기 초 일본 예술계 전반에서 일어난 아나키즘적 움직임에 관한 책이다. 메이지 말기의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적 창조와 향유의 주체로서의 개인에 집중했고, 이는 건축 영화 문학 미술 등 전 영역에서 다양한 양식으로 표출됐다. 저자가 수많은 ‘전위의 계절’ 중 유독 이 시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나’라는 당대 최대의 이슈가 21세기 신자유주의와 상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사회는 복지국가 체제에서 일정한 안정을 보장 받던 개인을 “조직 외부에 매달아 놓는”다.
“현대는 개인이 조직의 보호막을 잃어버리고, 유동하는 사회에 내던져져 버린 시대이다. 때문에 다시금 개인적인 창조성이 조명 받고 있다. 거기서 벌거벗겨진 ‘생명(삶)’의 의미가 정치적 쟁점이 되어 가고 있다.”
개인의 창조성에 집중하는 시대적 상황은, 나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던 20세기 초 일본 예술계의 아나키즘과 묘하게 겹친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연마해야 하는 현대의 패배적인 분위기와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으로 터져나갈 것 같았던 당시의 혁명적 분위기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지만, 혁명이 패배의 다음 순서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쨌든 공통점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고정된 상징적 질서가 쇠한” 시대, “개인의 생명이 지닌 창조성을 최대한으로 강조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책은 소설가 아리시마 다케오를 시작으로 미야자와 겐지, 에도가와 란포, 야나기 무네요시, 오스키 사카에, 곤 와지로, 야스다 요주로, 요코미쓰 리이치, 하기와라 교지로 등 20세기 초 일본에서 개인의 창조성과 나의 단독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이들을 하나하나 조명한다. 일본 근대시인 중 가장 과격한 실험을 했다고 평가 받는 하기와라 교지로의 시는 문자와 행과 열이라는 시의 기본 틀을 숫제 무너뜨려 버린다. 글자의 나열보다는 기호의 무리에 가까운 하기와라의 시는 내용 전달이 아닌 “단지 여기에 화자가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려줌으로써 자신에 대한 광적인 구애를 표출한다. 그가 1925년 펴낸 시집 ‘사형선고’ (1925년) 서문은 당대의 전위적 분위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시구를, 시의 행을, 산문과 같이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서 피곤해하지 말라! 다음 행까지 공손히 운반하는 역할을 포기하라! 각 행 각자에 독립을 외쳐라! 홀로인 채로 강렬하게 폭소하라! 또 절규하여라! 강함, 강한 감각을 지녀라!”
시구와 행을 파괴하고 상식적인 수염 길이를 제안하길 거부했던 당대 혁명가들의 면면을 살핌으로써 저자는 최종적으로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한다. 모든 권위가 무너져 내린 오늘날, 우리가 저마다 자신의 생명의 의미를 확인해야 할 때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그 답은 ‘나’의 현재와 생명을 전폭적으로 신뢰함으로써 세상의 틀을 망가뜨리는 것까지 서슴지 않았던 아나키스트들이 쥐고 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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