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국제 동물보호단체가 26일 정동 프란시츠코 회관에 모였습니다. 국내에 전시중인 멸종위기종 흰고래(벨루가)의 필리핀 반출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동물자유연대와 어스 아일랜드 인스티튜트(이하 EII)는 거제씨월드의 실소유자인 림치용 사장이 러시아에서 포획해 한국으로 들여온 흰고래 4 마리를 본인이 필리핀에서 운영하는 수족관 ‘마닐라 오션파크’에 전시하기 위해 필리핀 정부에 벨루가 수입 허가를 요청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마닐라 오션파크는 흰고래 수조를 건설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동물보호단체들이 흰고래의 필리핀 이사를 반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흰고래는 북극해에서 사는 동물인데 열대기후인 필리핀에서 생존하기는 우리나라보다도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점입니다. 더구나 온도 조절이 되지 않는 야외 수조에서 전시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흰고래의 건강에 치명적일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또 흰고래 전시시설 증가는 외래종 해양포유류 전시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고, 이는 결국 러시아의 흰고래 포획 산업을 지속, 확산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실제 두 단체가 최근 거제씨월드를 방문해 흰고래들을 보니 강한 햇빛 때문에 머리 부분에 일광 화상을 입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야생에서보다 수면 위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은 수족관에서 고래가 햇볕에 화상을 입는 것은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특히 멜라닌 색소가 적은 벨루가는 더 햇볕에 취약하다고 하네요. 이형주 동물자유연대 정책국장은 “깊은 바다에 사는 흰고래가 야외 수조에서 사육되고 훈련과 먹이주기에 동원되면서 머리를 수면 밖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따라 입은 화상일 가능성이 있다”며 “흰고래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놓을 때마다 강한 햇빛 때문에 눈을 질끈 감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고통 받는데 기온이 높은 필리핀에서 받을 고통은 더 크겠지요.
필리핀의 야생동물자원보존법은 ‘멸종위기종 수입이 야생동물의 생존과 서석지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수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미 전시되고 있는 흰고래들은 야생동물이 아닌 전시동물이기 때문에 이 규정을 피해갈 가능성도 있다는 게 보호단체들의 지적입니다. 림치용 사장이 필리핀 전시를 위해 국내에 4마리를 들여온 것 아니냐는 겁니다.
필리핀의 멸종위기종 수입 시 정부가 자문을 구하는 과학기관인 필리핀 국립박물관과 실리만 실리만 대학의 해양과학대학도 모두 해당 흰고래의 반입을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북극해에 서식하는 벨루가가 열대기후인 필리핀에서 사육될 경우 폐사할 가능성이 높으며, ▦벨루가의 수출, 수입 모두 야생에서의 벨루가 개체수 제거로 인해 종 보존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들었습니다.
앞서 2012년 미국 조지아 아쿠아리움은 미국 국립해양수산국에 러시아에서 포획된 벨루가 18마리를 수입하겠다는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기각 당한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벨루가의 수입이 종과 개체수에 대해 미칠 악영향과 ▦러시아의 해양포유류 포획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등이 꼽혔다고 합니다.
동물자유연대와 EII는 필리핀 정부에 흰고래 문제가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국제서명운동(▶ 바로가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흰고래들이 거제씨월드도 필리핀도 아닌 북극해로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까요.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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