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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쿤다' 억울한 죽음… 여권 향상의 촉매제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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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쿤다' 억울한 죽음… 여권 향상의 촉매제 되나

입력
2015.03.2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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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페인트 바른 시위대

누명 쓰고 폭행 사망에 격분

이슬람교 통상적인 관례 깨고 여성들이 직접 시신 운구 '파격'

전향적인 정부… 갈 길 멀다

성폭행 5명 사형 집행 단행

취업 등 여전히 남편 동의 필요

지난 24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한 여성 시위자가 얼굴에 붉은색 페인트를 묻힌 채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붉은색 페인트는 피투성이가 된 파르쿤다의 얼굴을 상징한다. ●카불=AFP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한 여성 시위자가 얼굴에 붉은색 페인트를 묻힌 채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붉은색 페인트는 피투성이가 된 파르쿤다의 얼굴을 상징한다. ●카불=AFP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이곳에서 2,000명이 넘는 시위대가 가두행진을 하며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며 관계자 처벌을 주장했다. 아프간 여성 ‘파르쿤다(28)’의 죽음에서 촉발된 군중 시위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주로 여성들로 이뤄진 이날 시위대는 가두행진을 하며 몰매를 맞아 숨진 파르쿤다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일부 여성들은 피투성이가 된 파르쿤다의 얼굴을 상징하는 붉은색 페인트를 얼굴에 바른 뒤 시위에 참여했다.

파르쿤다 사건과 관련, 경찰은 살해에 가담한 19명을 체포하고 폭행을 방관한 경찰 13명에게 정직 처분을 내렸지만 파문을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인권운동가 라민 안와리(30)는 “파르쿤다를 살해한 자, 그리고 그 행위를 지지한 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누명을 쓰고 백주 대로에서 살해된 파르쿤다

파르쿤다는 지난 19일 한 이슬람 사원 인근에서 점쟁이와 언쟁을 벌이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불태웠다’는 누명을 쓰고 군중에게 몰매를 맞아 숨졌다. 당시 수백 명으로 불어난 군중은 파르쿤다를 무차별 폭행하고 시신은 불태워 강물에 버렸다.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점쟁이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었다”고 자백했다. 경찰 역시 “파르쿤다가 코란을 불태웠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며 “그녀는 무고하다”고 밝혔다. 아프간 여성위원회 위원장 판타나 가일라니는 “사건 장소는 경찰서와 멀지 않은 곳이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끔찍한 일이 자행됐다”고 한탄했다.

그녀의 장례식 역시 파격적인 방식으로 치러졌다. 통상적인 이슬람교 관례를 깨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여성 인권운동가들이 시신을 운구했던 것. 이슬람 권에서 여성은 장례식에 조차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커져가는 여성 인권 신장 목소리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시위를 계기로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여성 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개발계획에 따르면 아프간은 성 불평등지수(GIIㆍGender Inequality Index)가 0.712로 아프리카 니제르(0.707), 예맨(0,747)과 함께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특히 여성 성폭력 몇 성추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수도 카불의 경찰서에서는 남녀 경찰이 공동으로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경찰서 화장실에서조차 성추행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경 두 명이 짝을 지어 서로 망을 봐 주며 화장실을 가거나 근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귀가 후 집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경 M(22)씨는 “내가 경찰인데도 결혼 전에는 아버지가 매일 출퇴근 길에 동행했고 지금은 남편과 출퇴근을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여성인권 운동에는 소수지만 남성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억압의 상징인 부르카를 두르고 거리로 나와 여성 학대와 폭력을 비판하고 있다.

미군 철수 연기… 여성 인권 향상에 도움

여기에 아프간 내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정치적인 의도까지 맞물려 아프간 내 여성 운동이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일부 여성들은 아프간 내 미군 주둔이 취업, 공무원 승진 등 각 분야에서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 역시 2001년 10월7일 아프간 공습 당시 내세운 전쟁 명분이 9ㆍ11테러를 일으킨 ‘빈 라덴 체포’와 ‘아프간 여성의 해방’이었던 만큼, 여성 인권 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카불 시내에서 옷을 만들어 팔고 있는 한 여성은 “미군이 주둔한 이후 직업 선택, 외부활동 등이 훨씬 자유로워졌다”며 “이슬람 교리에 엄격한 탈레반 정권이 재집권하면 여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일단 버락 오바마 비대통령은 지난 24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올해 말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현행 9,800명 선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미 정부는 올해 말 주둔 병력을 5,000명까지 줄일 계획이었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아프간 정부는 “성폭력 근절 및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아프간 정부는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남성 5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다. 이들은 8월 카불 교외에서 차를 타고 귀가하던 가족을 상대로 금품을 빼앗고 임신부 포함 여성 4명을 집단 성폭행했다. 1심에서는 7명이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2명 만이 징역 20년형으로 감형됐다. 대법원에서도 이 판결이 유지됐다. 아프간에서 사형이 집행된 것은 최근 14년 동안 단 두 차례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5명을 한꺼번에 사형 집행을 한 것은 정부가 심상치 않은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2013년 말 현재 아프간 경찰 중 여경은 1,500여명으로 전체 경력의 1% 정도를 차지하는데 매년 여경 채용 규모를 점차 늘릴 예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실제로 아프간 여성들은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공부와 취업이 가능하고 혼자선 병원에도 갈 수 없으며 4일에 한번씩 남편과 잠자리를 가져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 운동가 가일리니는 “외출조차 금지됐던 탈레반 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아프간 여성의 생활은 혁명적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세대들을 위한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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