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나면 대충 동네가 짐작되는 어느 초등학교의 첫 엄마 모임에서다. 한 엄마가 말문을 열었다. “이제 다 모였으니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저는 이대를 나왔구요.” 모두의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경색됐다. 하지만 이 엄마는 우아한 목소리로 남편의 학력과 직업까지 상세히 설명하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약간의 정적 후 바통을 이어받은 다음 엄마. ‘이런 자리에서 학력과 직업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상호간에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할 용기가 아마도 그에게는 없었을 것이다. 찝찝한 고해성사가 줄줄이 이어졌다.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는 “이게 다 김혜수 때문”이라며 공연히 ‘타짜’의 정 마담을 원망했다.
새 학기면 배부되던 가정환경조사서가 없어진 지 3년이 됐다. 부모의 최종 학력과 출신학교, 직업, 직책, 소득 수준, 주택소유 여부 등을 적나라하게 조사해가던 가정환경조사서의 폐해가 수 십 년 동안 반복되다가 2012년에야 위화감 조성을 막고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교육부에 의해 폐지됐다. 그러나 유구한 전통은 그렇게 쉽게 소거되지 않는다. 저 집 아이의 출신성분과 계급을 알고자 하는 우리-교사와 학부모-의 욕망은 결코 근절되지 않아서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의 레이더는 더욱 교묘한 형태로 곳곳에서 번득인다. 아이가 입은 옷의 브랜드를 보려고 목 뒤를 뒤집어 태그를 살펴본다는 유치원 교사, 수업시간에 부모의 직업을 발표하게 했다는 초등학교 선생님…. 세상만사의 판단과 인간 교류의 시작을 등급 매기기에서부터 시작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고질병이 서류 한 장 금지했다고 그리 쉽게 고쳐질 리가 없다.
학교와 가정은 아이를 함께 키우는 교육공동체다. 교사는 아이를 보다 잘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 아이의 가정환경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지당하신 말씀이 대한민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 사회는 교사와 학부모가 그토록 두터운 신뢰의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으며, 촌지와 차별과 체벌이라는 부정체험이 교육현장을 압도하는 곳이다. 아이들의 가정 형편이 배려의 근거가 아니라 차별의 토대로 주로 기능해왔다는 것은 이 사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체험한 바 있는 명확한 사실이어서 어떤 좋은 교사의 반례들도 이 명제의 역을 참이 되게 하지는 못한다.
아이들은 아무리 어릴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에서 단독자로 존재해야 한다는 게 내 믿음이다. 누구의 딸, 누구의 아들인 것은 잘못도, 자랑도 아니므로, 교사는 선별적 배려가 아닌, 보편적 배려를 실천해야 한다. 가난한 아이, 엄마 없는 아이가 실제 교실에 있든 없든, 있다는 전제 하에 발언하고 행동하는 교사가 옳다. 그것이 인권 감수성이다. 아이들에겐 감출 권리가 있고, 학교에는 모를 의무가 있다는 것. 그 사회적 합의를 공식화한 것이 가정환경조사서의 폐지이고, 무상급식의 시행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4월부터 무상급식을 중단하는 게 정말로 예산 문제 때문인지는 판단을 못 하겠다.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이로 인해 아이들의 감출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지 여부다. 경남도교육청에 문의하니 13일 신청이 마감된 무상급식 대상자 6만6,000명의 명단은 급식비 고지서 배부 작업 등을 위해 학교에 통보된다고 한다. 적잖은 사람들이 ‘가난한 학생이 수치쯤은 감내해야지. 대신 학비 지원 해주잖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은 낙인 효과의 반지름이 교사와 친구들, 친구의 엄마들에게까지 길게 뻗어 있는 특수 문화권의 초고밀도 사회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데가 아니라는 게 화끈한 도지사의 설명이지만, 공부야말로 근심이 없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개천의 용이 되겠다며 원한의 힘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심성이 비뚤어져 훗날 사회의 해악이 되기 쉽다. 그러고 보니, 엘리트 검사 출신 홍 지사도 어릴 적 도시락 싸갈 형편이 안 돼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고 하지 않았나?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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