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걸맞은 스펙타클한 말러였다.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 필하모닉이 들려준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은 참신함이 돋보이면서도 충분한 설득력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지휘자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휘몰아치며 곡을 이끌었고, 단원들은 영화배우처럼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휘대에는 악보가 놓여있지 않았다. 지지대도 치워버렸다. 그곳엔 오로지 말러가 그린 거대한 파멸의 쾌락이 1시간 30분 동안 분수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일단 선곡이 현명했다. 해외 악단의 내한 공연에서 식상하도록 연주되던 교향곡 1번 ‘거인’이나 5번이 아닌, 가장 말러답고 어두운 6번을 선택한 센스가 탁월하다. 1악장부터 LA 필하모닉은 만화경처럼 다채로운 해석을 들려주었다. 두다멜은 자신에게 따라다니는 ‘천재 지휘자’ ‘스마트한 젊은 리더’ 같은 수식어를 충분히 입증했다. 2대로 중복된 첼레스타(뮤직박스 같은 음색을 지닌 건반형 타악기)는 팀 버튼 영화에 나올 법한 긴장감을 자아냈고, 콘서트마스터는 짧은 바이올린 독주 부분에서 할리우드 올드 스쿨 필름스코어에 등장할 법한 카페 비브라토를 선보였다. 수석 트럼펫은 눈에 띄는 실수 없이 탄탄한 연주를 했는데, 전성기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브라스에서 느껴지던 날카로운 찬란함에 이르지는 못했다.
말러 교향곡 6번은 작곡가가 중간 악장의 순서를 가지고 오래 고심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국제말러협회가 정본으로 인정한 안단테-스케르초의 순서가 선택되었다. 안단테 악장은 요즘 신진 지휘자들에게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폭넓은 템포 속에서 몽환적인 표현이 돋보였다. 독일의 초일류급 오케스트라가 선보이는 그을린 듯한 일체감과는 사뭇 달랐으나 LA 필하모닉은 나름의 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스케르초 악장은 말러 음악의 중요한 요소인 ‘클리셰(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의 연속’을 성취하고 있었다. 4분의 3박자로 절뚝거리는 좀비의 행진곡으로 개시한 음악은 갑자기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코스튬을 입은 듯한 루이 14세의 미뉴에트로 전환됐다. 해골이 흐느적거리는 듯한 탱고의 춤사위가 펼쳐지더니, 거대한 패닉의 부분에서는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개성적인 연출이 있었다. 마치 곡을 생전 처음 듣는 듯한 신선한 착각을 누렸다. 피날레를 위한 짧은 전초전쯤으로 간주되던 스케르초 악장이 그로테스크한 3D 입체영화가 된 것이다.
30분 동안 쉼 없이 연주되어 ‘교향곡 속의 또 하나의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피날레는 곡의 본질이 잘 지켜졌다. 두다멜은 장난기를 배제한 진중한 자세로 ‘비극’을 연출했다. 말러 교향곡 6번의 상징인 나무 해머와 그 타격을 받아내는 사각의 나무판은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거창했는데, 규모에 비해 조금은 밝은 음향이었지만 단두대 같은 존재감으로 시종일관 무대를 압도했다. 사소한 실수는 있었지만 완성도에 흠집이 나지는 않았다.
곡을 마친 뒤, 소름 끼치는 긴 침묵 후에야 비로소 갈채가 터져 나왔다. 열광적인 커튼콜은 또 하나의 악장이었고 자칫 사족이 될 수 있는 앙코르도 온전히 배제되었다.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완벽한 마무리였다.
김문경·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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