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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곡괭이로 파 만든 무대에 명동시대 정리하는 작품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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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곡괭이로 파 만든 무대에 명동시대 정리하는 작품 올리고 싶다"

입력
2015.03.2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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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이어 온 국내 첫 민간극장

신진들의 등용문이자 실험무대

어떻게든 지켜보려 했는데…

10여년간 제작비 건졌던 적 없어

기업 후원 끊긴 뒤엔 월세 못 내

훗날 '창고극장' 이름 살리고 싶어

정대경 삼일로창고극장 대표는 "서울시가 100년 후 세대에게 보물로 남겨 주자며 삼일로창고극장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놓고 지원이나 후속 대책은 없었다"며 "생색내기용 탁상행정으로 개축을 결정한 건물주만 비판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년)
정대경 삼일로창고극장 대표는 "서울시가 100년 후 세대에게 보물로 남겨 주자며 삼일로창고극장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놓고 지원이나 후속 대책은 없었다"며 "생색내기용 탁상행정으로 개축을 결정한 건물주만 비판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년)

서울 명동성당 뒤편 언덕길 중간, 그냥 지나치기 쉬운 좁은 길 안쪽에 ‘삼일로창고극장’이라는 문패가 눈에 띈다. 1975년 ‘에저또창고극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민간극장이다. 23일 만난 정대경 대표는 대뜸 극장 문패 옆을 가리키며 “저 간판을 꼭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간판에 적힌 말은 ‘예술은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안을 줄 수 있습니다’. 정 대표는 “우리 극장이 추구했던 게 바로 저것”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이 간판을 보지 못한다. 40년이나 명맥을 이어온 이 극장이 내년 문을 닫는다. 70년대 연극의 중심이었던 공간사랑, 민예소극장, 실험극장소극장, 엘칸토소극장, 중앙소극장 등은 이미 폐관됐다.

정씨는 “어떤 직책보다 삼일로창고극장 대표라는 게 자랑스러웠고, 연극계에서 활동한 경력도 있어 주변 몇 사람이 힘을 모으면 극장이 살아날 줄 알았다”며 “한국 연극사에 큰 의미가 있는 극장이기에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했으나 수익 창출이 어려워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월세가 1년씩 밀려도 정씨를 격려하며 기다렸던 삼일로창고극장 건물주는 내년 이곳에 새 건물을 개축하기로 했다.

적막한 극장 안 복도에는 이 극장을 전설로 만든 ‘빨간 피터의 고백’ ‘대머리 여가수’ ‘티타임의 정사’ 같은 대표작들이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정씨는 “몇 년 전까지 비가 오면 지붕에 물이 새 물받이 깡통을 달고 공연했지만 그래도 배우와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선배들의 기운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곡괭이로 파서 만든 무대였다.

정씨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처음 본 연극은 1977년 추송웅의 1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 연극인으로서도, 개인적으로도 이 극장은 각별한 셈이다. 추송웅이 제작, 기획, 연출, 장치, 연기까지 1인 5역을 맡은 이 작품은 그 해 관객 1만3,000여명을 모으며 모노드라마 붐을 일으켰다. 그는 “삼일로창고극장은 신진들의 등용문이었고, 다양한 작품과 제작 시스템을 실험한 무대였다”고 덧붙였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연중 무휴 공연과 제작 PD시스템을 도입해 많은 연출가를 길러냈다. 강영걸 오태석 등 연출가와 박정자 윤여정 유인촌 등 많은 배우들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77년 연극 ‘결혼’에 단역으로 출연한 배우 윤석화는 “민중극단에서 활동하던 당시에는 설 수 있는 무대가 별로 없었다. 창고극장은 연극의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상징하던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 명동 복판에 숨은 듯 위치한 삼일로창고극장. 개관 40년 된 역사적 소극장이 문을 닫게됐다.
서울 명동 복판에 숨은 듯 위치한 삼일로창고극장. 개관 40년 된 역사적 소극장이 문을 닫게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어려움을 겪은 극장은 여러 차례 폐관 위기를 겪었다. 정대표는 “10여년 간 연극 제작비를 건졌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요즘 시대에 극장 기획 작품을 올리고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최소한 250석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165.3㎡(약 50평) 남짓한 공연장의 객석은 106석. 기획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서는 매달 극장 유지비 700만~800만원 외에 배우 월급, 희곡 판권료 등 작품 제작비가 1,500만원 이상 든다. 2011년부터 태광그룹 후원 덕에 명맥을 이어갔지만 2013년 10월 지원이 끊긴 뒤 한 달에 330만원인 임차료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극장문을 닫기 전 ‘명동시대’를 정리하는 작품들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개관 40주년 기념작으로 ‘빨간 피터의 고백’을 비롯해 ‘동물원이야기’ ‘세일즈맨의 죽음’ ‘금관의 예수’ 같은 극장 대표작과 ‘신진 등용문’이라는 옛 명성에 걸맞게 젊은 연출가들의 작품을 올리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다. 정대표는 “마지막 공연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서라도 올릴 생각”이라며 “훗날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라도 창고극장 이름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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