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독재적 정부 운영으로
표현의 자유·사회 참여 제한에 반감
이민자 급증·생활비 상승 압박도 한몫
지난 23일 싱가포르의 ‘국부’리콴유(李光耀) 전 총리 타계를 계기로 50년간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정부 운영을 기반으로 했던 싱가포르 모델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4일 뉴욕타임스는 자신이 평생 살던 집을 “허물어 버리라”고 했던 리 전 총리의 유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언급하며, 리 전 총리의 집뿐만 아니라 그가 세운 더 큰 집인 ‘싱가포르 모델’을 허물고 새로 세우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반세기 싱가포르를 이끌어 온 리콴유식 국가 발전모델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바로 젊은이들의 사회참여 요구다. 싱가포르 모델은 단일 정당이 독재적인 정부 운영방식과 자유방임 경제 정책을 혼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모델은 그동안 성공적으로 작동해 왔지만, 질서와 번영의 대가로 개인의 자유는 억압돼 왔다. 키쇼어 마흐부바니 전 싱가포르 유엔대사는 “젊은이들은 사회 정치 경제 이슈 전반에 걸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길 원한다”며 “싱가포르는 변곡점에 서 있다”고 NYT에 말했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다원주의의 부족으로 이미 싱가포르 모델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 동안 정부는 반대자들을 파산으로 몰아넣거나 사법부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고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회 비평가인 캐서린 림은 지난해 정부에게 공개 편지를 보내 “우리는 사람들이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정부도 신뢰를 회복하는데 더는 관심이 없는 위기의 한 가운데 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는 이민자의 급증과 생활비 상승에 따른 국민들의 반감이 심각한 수준이다. 저출산에 맞서기 위해 약 15년간 정부가 이민을 장려하면서 2000년 이후 이민자 숫자는 75만4,000여명에서 160만명으로 두 배로 늘었다.
하지만 전세계적 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싱가포르에서도 고임금 저임금 인력을 막론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싱가포르인의 몫을 빼앗아 간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민자들에 대한 반발로 정부는 외국인 고용을 까다롭게 만드는 법안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이민 장려를 통한 인구 증가 계획을 계속 진행하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리콴유 생전 굳건했던 인민행동당도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리 전 총리의 아들이자 현 총리인 리셴룽(李顯龍)을 포함한 후계자 중 어느 누구도 리 전 총리만큼의 명성과 권한을 얻지 못했다. 여기에 정부에 순응적이었던 언론 대신 인터넷이 다양한 의견을 증폭시키는 통로로 활용되면서 집권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01년 이후 인민행동당의 의석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NYT는 당장 인민행동당의 여당 독점 체제가 변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변화에 대한 기대는 커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싱가포르 전반에 걸친 개혁 요구에 대해 리콴유공공정책학교 부학장은 “앞으로 정부 혼자 미래를 이끌어갈 수는 없다”며 “국민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사회 계약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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