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살바도르의 로마 가톨릭교회 대주교 오스카 로메로(1917~1980)가 숨진 지 만 35년이 됐다. 남미 해방신학의 상징적 존재로 빈자의 생존권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로메로 대주교는 80년 3월 24일 프로비덴시아 병원 경당에서 말기 암환자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던 도중 군사정권에 의해 암살됐다. 당시 레이건 미 행정부는 좌파 인민해방전선을 견제하기 위해 우파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했다.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피살 전날 인터뷰에서 “순교는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 내 생명의 희생을 받아주신다면, 내 피가 해방의 씨앗이 되고 곧 현실로 다가올 희망의 증표가 되기를 바랍니다”라 말했다. 하느님은 뜻은 알 수 없으나 로마 교황청은 무려 35년 뒤인 지난 2월에야 그의 죽음을 순교로 인정했다. 시복식은 5월 23일 엘 살바도르에서 열린다.
하지만 교황청 조치 이전부터 엘 살바도르의 시민들에게 그는 ‘산(sanㆍ聖) 로메로’였다. 가톨릭 교회 바깥, 예컨대 영국 국교회와 루터파 일부 개신교단도 그를 성인 달력에 등재해 기리고 있다. 런던 웨스터민스터 대성당에는 20세기 순교자 10인 가운데 한 명으로 그의 성상이 서 있다.
그가 숨진 뒤 태어났을 한 청년이 추도식 영정 그림을 그리고 있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산 살바도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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