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수학 없어지고 영어만 남아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A씨는 ‘e-교과서’를 다운로드받기 위해 학교에 인증번호를 문의했다가 “교과서가 바뀌면서 국어와 수학 e-교과서는 더 이상 보급되지 않으며, 영어도 듣기자료만 제작된 상태”라는 답을 받았다. e-교과서는 영어의 경우 종이 교과서로는 접할 수 없는 원어민 발음 듣기, 말하기 등이 가능해 특히 인기가 높았다. 국어와 수학도 재미있는 동영상, 애니메이션 등의 자료에 오답노트까지 제공해 충실한 학습보완재로 활용돼 왔다. A씨는 “e-교과서 덕분에 국영수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는데 교과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니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보내야 할 상황”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정부가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생들의 자기주도 학습 역량을 키우겠다며 2011년 도입했던 e-교과서가 잦은 교육과정 개편으로 고사될 위기에 처했다. 종이 교과서는 바뀌었는데 정작 관련과목의 e-교과서는 개발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보여주기식 교육행정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는 지적이다.
24일 교육계에 따르면 그동안 전국 초ㆍ중학교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보급됐던 국어, 수학, 영어(초 1, 2학년 제외) 등 핵심 과목의 e-교과서는 올해는 영어만 남았다. 그나마 영어도 e-교과서 도입 이전부터 제공됐던 듣기평가 관련 자료 정도만 제공된다.
e-교과서는 도입 당시 CD 형태로 보급하다 예산 낭비라는 지적에 따라 2012년 2학기부터 지금의 인터넷 전송 서비스를 갖췄다. 각급 학교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으로부터 인증번호를 부여 받아 이를 가정통신문으로 알리면 가정에서 내려받아 예ㆍ복습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e-교과서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것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정부의 교육과정 개편 때문이다. e-교과서 도입 당시 종이 교과서는 2007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제작됐는데, 불과 2년 뒤 2009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또 교과서가 바뀌었다. 종이 교과서의 변화에 따라 당연히 e-교과서도 새로 제작돼야 하는데 정책적인 뒷받침이 없어 과목별로 폐기 수순을 밟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2013년에는 초등 3, 4학년이 2009 교육과정을 적용 받으면서 해당 학년의 국어, 수학과목의 e-교과서 서비스가 중단됐다. 작년에는 2007ㆍ2009 교육과정 적용 대상이 혼재되면서 국영수 전 과목에서 e-교과서를 보급받는 학년과 영어만 보급받는 학년이 나뉘었다. 올해는 전체 초ㆍ중학교에 2009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영어 듣기자료만 남게 된 것이다. 한 교육 관계자는 “e-교과서의 사교육비 경감 효과가 적지 않았는데 결국 사장됐고, 교육 현장만 혼란을 겪었다”고 꼬집었다.
교육부는 e-교과서가 디지털교과서로 바뀌는 과정이라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개인 맞춤형 수업이 가능한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위해 현재 131개 초ㆍ중학교를 대상으로 사회와 과학 과목에서 시범운영을 실시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디지털교과서가 이름만 바꾼 e-교과서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는데다 올해 또 교육과정 개편이 예고된 상태여서 전국적인 보급은 당장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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