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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집들이 만세

입력
2015.03.2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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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를 하느라 한정식 집에 갔다. 이사한 지 5개월 만이다. 사는 게 바빴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 오셨다. 서울 생활이 29년째니 당연히 처음은 아니다. 그런데 처음이 맞다. 오시면 연남동 이모 집에서만 주무셨다. 그리고 나는 본의 아니게 처가살이를 하는 사내로 여겨졌다. 그래서일까. 보수적인 부모님은 집에서 머물지 않았다. 그런데 드디어 집을 찾아오셨다. 잠까지 주무셨다!

기적이다. 집에 부모님이 오신 거다. 아버지는 33년, 어머니는 38년생이다. 두 분은 완고하다. 나의 옷차림을 탐탁지 않게 보시고 연극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뢰를 하지 않으셨다. 나는 당신들 눈에 언제나 모자란 자식이었다. 그러시던 부모님께서 흡족해하셨다. 1998년에 지은 이 낡은 다세대빌라를 좋게 보시다니. 딴딴하게 지은 집이라며 위로에 아낌이 없으셨다, 아싸!

맞다. 찾고 찾았던 집이 맞다. 지하철 노선을 따라 대학로에서 강북 쌍문동까지 많은 집을 형편 따라 보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보았던 새 집들은 영혼이 없었다. 내 눈에는 가짜였다. 입구를 세련되게 만들고 주차장을 머리를 써서 지었지만 심장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나는 그 모든 집들을 둘러보다가 진심으로 포기했다. 형편을 탓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대충 사람을 속이려 들까 하며 분개도 토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집을 만났다. 그리고 아랑곳없이 선택했다. 묘하게도 나는 집에서 정성을 느꼈었다.

그렇게 집에 이사를 오고 다섯 달을 잘 산 다음이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집들이를 하자고 떼를 쓰셨다. 감격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시간이 너무 지나지 않았나. 그런데 그 기세를 거부할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니구나. 그것은 당신들의 의식이었다. 자식의 집을 한번 훑어봐야 직성이 풀리시는구나.

곧장 마음을 바꿨다. 좋다. 하자. 이렇게 집들이가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어머님께서 내가 네 살 때 가평에서 우리 윗집에 살았던 이웃까지 초청을 하셨다는 것을.

가까운 친척만 모였는데 부모님이 난데없이 옆 테이블 손님이 되었다. 그 옆자리에 옛날 이웃과 자리를 잡으신 거다. 내 자리에서는 약간 떨어져서 무슨 말씀들이 오고 갔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분들은 사십 몇 년 만에 만난 윗집 아랫집 우정을 처음으로 나누며 그 자리에서 서로의 말씀을 이어가셨다. 나중 생각해보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삼십 대 청춘이었을 때의 기억을 이야기하고 계셨다.

어찌 보면 아버님이 앉으신 옆 테이블이 가장 뜨거웠다. 부모님들의 이야기는 거반 오십 년 전에 가까웠다. 빨간 소주가 차라리 순했다. 그리고 그분들의 추억은 금방 삼십 대의 추억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얼마 안가 곧 씁쓸해졌다. 아니 그분들 관계가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이야기의 맥락이 그랬다. 현재로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가끔 끊겼고 그럴 때마다 어색해졌다. 추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이를 드신 그 분들조차 공통의 분모를 찾으려 애쓰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당연하다. 옛날 이야기만으로 현재를 이어갈 수는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옆집에 살았던 내외분 사이에는 추억만 공유하기에 너무나 긴 세월의 벽이 있었다. 다시 깨달았다. 다만 추억으로 현재를 연결한다는 일이 꽤 어렵다는 것을, 추억은 추억일 따름이라는. 부모님을 강남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리는데 문득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이 떠올랐다. 아사꼬! 세 번째는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버님께서 그 내외분을 당신 집으로 초대하시겠단다! 그러자 어머님도 대뜸 그럽시다, 그러신다! 추억이 현재로 이어져 다리가 되고 있었다. 당신들의 그 뜨거웠던 청춘의 추억을 내가 어찌 짐작할 수 있으랴. 집들이 만세다.

고선웅 연극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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