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저자 스티븐 핑커는 과학계에서도 번역이 까다롭기로 이름난 문장가다. 이 책을 번역한 김명남씨는 술술 읽히는 문장으로 풀어냈다. 참고논문을 찾아 읽어가며 원저를 파고든 덕에 과학뿐 아니라 역사학, 정치학을 넘나드는 핑커의 분석을 고스란히 옮겨냈다.
스스로를 ‘생계형 번역가’라 이르며 몸을 낮췄지만, 카이스트 화학과,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공부한 그는 탄탄한 배경지식과 문장력으로 출판계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김씨는 19일 북콘서트에서 과학전문번역가로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에 회답했다.
-국내에 전업 번역가가 얼마나 있을까.
“한 해 나오는 책 4만종 중 30%가 번역서이고, 전업 번역가가 옮긴 것은 5,000종 정도다. 한 사람이 1년에 6권 정도 낸다고 보면, 영어책 번역가는 400명쯤 필요하다. 그 중 과학책 번역을 하는 제 동업자는 30명 정도 아닌가 싶다.”
-과학책 번역과 다른 책 번역은 어떻게 다른가.
“진부하지만 정확성이 가장 중요하다. 과학지식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명왕성 퇴출, 주기율표 변화 등 지식 변화를 늘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전공자가 한다면 사소한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더 어려운 것은 용어 선택이다. 시시각각 새 용어도 나오고, 대뇌피질, 대뇌겉질 등 학계마다 달리 쓰는 말도 많다. 번역서 출간이 너무 늦으면 이미 케케묵은 자료가 되니 좀 더 서둘러야 한다는 점도 있다.”
-왜 과학책 번역을 하게 됐나.
“과학책 정말 안 팔린다.(웃음) 그런데도 왜 할까. 네 종류 번역가가 있다고 본다. 영어 불어 등 출발어의 아름다움에 감화된 경우, 도착어 즉 한국어에 빠진 분, 스토리텔링에 반한 분, 텍스트에 담긴 지식에 매료된 경우. 저는 네 번째다. 원서에 담긴 지식에 매력을 느낀다. 소설가 배수아씨 말처럼 번역은 가장 강도 높은 독서다. 독서하고 지식을 쌓는데 돈도 버니 계속 한다.”
-어떻게 과학책 번역가가 될 수 있나.
“출발어, 도착어, 배경지식은 필요조건이다. 이 세 가지를 재료로 삼아 직접 번역을 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번역은 영어, 한국어, 과학지식을 각각 이해하는 것과 정말 다르다. 해보고 첨삭을 받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책 시장이 죽고 있어 단행본 번역가에게 얼마나 미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책 번역가는 저널 번역 등 다른 가능성도 많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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