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고정관념’ 또는 ‘선입견’이라 불리는 일련의 부정적인 관념들은 실상 ‘사실’ 그 자체에서 파생되어 굳어진 것이 아닐까 얼핏 생각해 본다. 특히 타인의 삶에 대한 이런 관념들은 대체로 그 삶이 지닌 현실적인 상황에 따른 문제적 현상들에 집중하게 되면서 더욱 단단하게 굳어지기 마련이다.
한참 개발이 진행 중인 국가를 ‘규정’하는 용어인 ‘제3세계’ ‘저개발국가’ 등의 호칭은 자연스럽게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상상하게 만든다. 대부분 곤궁한 삶의 외양이 드러난 이미지들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고 그들의 삶 안에 오롯이 들어앉아 있을 일상의 행복 따위의 형상들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그들’의 가난은 사실이고 곤궁한 삶은 현실이니 그 나라에 대해 가난이라는 ‘고정’된 견해를 갖는 것에 실상 별다른 반박을 던지기도 어려운 것이다. 다만 그 나라와 사람들에 대해 다 ‘안다’고 여기며 더 나아가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은 무척이나 아쉽다. 결국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은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가난에 가려진 소소한 삶의 단상들, 생명으로서 지닌 존엄한 가치들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다시 옛 기억을 더듬어 본다.
캄보디아의 무더위가 한창인 7월의 어느 날 늦은 오후, 나는 한 작은 도시빈민촌 한복판에 들어가 있었다. 뭔가 찌든 듯한 분위기에 왠지 모를 서늘함 마저 주변에 가득했다.
조금은 두려운 가슴을 누르고 들어선 ‘타이분롱’ 빈민촌. 구호단체의 손길도 전혀 없는데다 외국인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 마을에 들어선 나는 괜히 왔다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더구나 이곳은 우범지역이라는 소문과 더불어 흉흉한 얘기들이 많이 흘러나왔었다. 그때 약물에 취했는지 반쯤 풀린 눈동자에 도저히 겉모습으로는 호감이 가지 않는 한 젊은이가 갈 짓자 걸음으로 비틀비틀 내게 다가왔다.
“헤이, 미스터! 쏨 아오이 바라이.”(어이, 아저씨! 담배 하나 주슈)
쿵쿵 뛰는 심장소리를 애써 감추며 그가 원하는 대로 담배를 건네주고 나서 얼른 떠나자고 마음을 먹었다. 담배를 몇 모금 빤 그는 갑자기 내 손을 잡아 끌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대충 봐도 그의 집은 마을 가옥들 중 가장 허름했고 천막은 거의 찢겨져 있었다. 안에 들어가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젠 마을사람들까지 내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내 몸을 만지며 신기해했고 내 오토바이 뒤에 실린 박스 속 사진액자들을 마구 꺼내보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나는 우선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그 취해 보이던 남자에게 내일 다시 와서 마을 주민들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섣부른 약속을 했다. 그때까지 나를 보채던 그는 내 말을 알아듣고는 고맙게도 주변을 밀치며 길까지 터주는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내일의 약속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굳이 지킬 필요까지는 없겠지 하는 생각은 여전히 그 마을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음날이 되어 약속한 시간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가느냐 마느냐 고민이 사라지질 않는 것이다. 안가도 그만이고 까짓 약속쯤 못 지킬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홀로 위안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타이분롱’ 마을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편해지는 길을 선택해야 했고 그것은 마을로 가서 약속을 지켜는 것이었다.
다시 마을로 들어가 어제의 그 집 앞에 서니 이제 정신이 멀쩡해 보이는 그 친구가 기쁜 표정으로 “쁘렌 쁘렌(친구)”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는 호들갑스럽게 나를 반겨주었다. 곧바로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그의 이름은 ‘바(30)’였고 아내는 ‘쏜타윈(20)’, 아들 ‘씨응(2)’과 딸 ‘쩨랑(1)’그리고 자주 놀러 온다는 조카 ‘쏜나이(8)’까지 모두 소개를 받았다. 지난밤부터 바로 직전까지 괜한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워했던 나 자신이나, 처음 보는 외국인 사진사가 진짜 자기를 찾아올까 안 올까 헷갈렸을 ‘바’나, 우린 속마음을 살짝 숨긴 채 환한 미소로 서로를 반겼다. 그날 이후 나는 이 마을을 자주 찾아가 주민들에 대한 무료 가족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친구 ‘바’는 동네반장님처럼 내 일에 대한 도우미를 자처해 주었다. 겉만 보고 함부로 그를 판단했던 내 속 좁은 생각에 어찌나 미안했는지.
털어냈다 싶었지만 여전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조금은 벗어낸 시간들이 지금 문득 생각난다. 앞으로도 이런 날들이 반복되겠지. 인생이란 실수의 연속이고 이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선입견이나 편견 따위가 사회적 통념이 되지는 않도록 하려면 어찌 해야 할까?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