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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실체 없는 사드 논쟁 그만 하라

입력
2015.03.2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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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韓非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안위는 시비의 가름에 있지 강약에 있지 않으며, 존망은 허실에 있지 병력 수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아니하다(安危在是非 不在於强弱, 存亡在虛實 不在於衆寡).” 국가의 안위와 존망을 담보해 주는 것은 군사력의 강약이나 크기 보다는, 안보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리더십의 내실이라는 이야기다.

저간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논쟁을 보면서 한비자의 성찰이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우선 이번 사드 논쟁에는 시비를 가릴 실체가 없어 보인다. 2013년 이래로 미 국방부 일부 관리들이 사드의 한국 배치와 관련해 여러 차례 언급해 온 것은 사실이나 이를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나 한미군사위원회(MCM)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제기한 적은 없다. 게다가 미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간에 조율된 입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 전 방한했던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아직 배치되지 않고 여전히 이론적 사안”에 불과하다는 발언이 이를 방증한다 하겠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에서는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고 찬반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정부의 혼란스런 태도가 이런 사태를 키우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2014년 초까지만 해도 우리 정부는 사드의 한국 배치 가능성을 일관되게 부인하며 ‘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작년 10월 한민구 국방장관의 ‘전략적 모호성’ 발언 이후 논쟁이 증폭되어 왔다.

최근에 와서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3월 11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미국 측의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태는 진정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일주일도 채 안 된 17일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미국 정부가 결정해서 협의를 요청해올 경우 군사적 효용성, 국가 안보이익을 고려해서 우리 주도로 판단하고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요청하면 사드 배치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우리 정부의 입장은 ‘부정→전략적 모호성→부정→부분 긍정’으로 바뀌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혼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원래 평택 미군기지 보호를 위해 미국이 자체적으로 배치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최근에는 ‘한국 구매설’이 대두된 바 있다. 그러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돌자 얼마 전 국방부는 사드 구매계획이 없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정부의 갈팡질팡하는 태도가 이번 사태의 일차적 원인이라 하겠다.

우리 정부의 위협 인식과 정책 추진 우선 순위도 문제시 된다. 기본적으로 사드는 최선이 아닌 차차선의 선택이다. 최선의 방책은 예방 외교를 통해 북의 핵, 미사일 위협을 제거하거나 축소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때 공격용 자산의 확보를 통한 억지력 증강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미국이 미사일 방어에 나설 수 있는 이유도 막강한 핵 보복 타격력 등 공세적 방어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의 미사일 공격을 종말 단계에서 요격한다는 사드는 그 다음 수순이다. 사실 북한이 우리에 대해 선제 핵 공격을 가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핵우산 공여에 따른 핵 억지력에 있지 미사일 방어시스템 때문은 아니다. 그런데도 단순히 ‘창의 역할’밖에 못하는 사드를 최선의 대안처럼 부각하는 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드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군사적 효용성과 국가안보 이익이다. 상식적 수준에서 보아도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간다. 우선 비용 문제다. 미국의 대외 수출사례로 보아 사드 한 개 포대를 도입하는데 적게는 1조(카타르), 많게는 3조원(아랍에미리트)이 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포대 당 평균 2조원으로 잡는다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4개 포대 구매 시 최소 8조원이 든다는 이야기다. 이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F-35 스텔스기 획득) 예산과 맞먹는 것으로 금년도 국방비(38조원)의 20% 정도에 해당되는 액수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주장대로 막대한 비용이 든다 해도 북의 핵, 미사일을 적시에 요격해 우리의 안보 불안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면 사드 도입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정은 달라 보인다. 사드는 북이 휴전선에 다량으로 배치해 놓고 서울, 경기 지역에 실질적 위협을 가하고 있는 장사정포, 방사포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사드는 주요 군사 및 산업시설 보호에 있지 일반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 북한이 1,000여 기 넘는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에 기만용 탄두를 탑재, 사드 시스템을 교란할 경우 그 실효성은 현저히 감소된다. 더구나 미국과 달리 종심이 짧은 한반도 지형에서 사드의 효용성은 크게 문제시 된다. 북한의 스커드 또는 노동 미사일이 서울까지 오는데 3분 30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 시간 안에 북의 미사일을 탐지, 요격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사드가 우리 국민 전체를 위한 ‘신의 방패’가 될 수는 없는 이유다.

국가안보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도 사드 도입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사드 체계를 도입하게 되면 대북 억지력이 부분적으로 증강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미일 3국 공조 하에 동북아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 시민들의 공황 심리를 완화하는데도 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더 커 보인다. 사드 배치는 남북한 군비 경쟁을 촉발하고 한반도 군사 긴장을 고조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은 ‘사드’라는 방패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새로운 ‘창’을 계속 개발하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북의 핵, 미사일 무장력은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강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반발 또한 간과하기 어렵다. 중국은 한미동맹과 북한에 대한 한미연합 억지력 행사를 한국의 주권적 권한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보가 중국의 안보에 위협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사드 배치를 계기로 한국이 미일 주도의 역내 미사일 방어체계로 편입된다면 한국도 중국의 전략적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이렇게 되면 한중 관계 악화와 북중 관계 강화라는 결과를 가져 오면서 북핵 문제 해결이나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타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신냉전 구도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으로 우리의 안보 딜레마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한중 경제 관계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어떻게 풀 것인가. 우선 국론을 분열시키는 섣부른 공론화를 피해야 할 것이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 요청이 오면 그때 가서 사드의 비용과 편익을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그러나 중국이 우리의 전략적 협력동반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중국 정부에게도 투명성 있게 솔직하게 얘기해야 한다. 그리고 사드 배치 이전에 예방외교 차원에서 북한과 공식, 비공식 차원의 대화를 재개하고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의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남북 관계가 풀리면 사드 문제 가지고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제는 국가안보실이 전면에 나서서 사드 관련 정책 혼선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비자로 돌아가자. 정부가 안보 현실과 사드 도입의 효용성에 대한 시비를 정확히 가리고 국가안보 운용의 내실을 기할 때 우리의 안보 역시 더 굳건해 질 수 있다는 가르침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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