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넘는 훤칠한 키에 다소 말라 보이는 체격. 방금 브라운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의 주인공은 데뷔 8년차 연극배우 이승주(34)씨다. 2013년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로 주목 받기 시작한 그는 지난해 주연을 꿰찼던 ‘유리동물원’, ‘엠버터플라이’의 재연으로 올해 다시 관객들을 만난다. 이승주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얼마 전 한태숙 연출의 연극 ‘유리동물원’이 재연되며 다시 출연했는데 초연과 달라진 점이 있었나.
“첫 재연작품이라 기대도 되고 호기심도 있었다. 작년 여름에 공연했던 것을 올 봄에 재연한 것이기 때문에 긴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다. 이전 공연보다 다르게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톰 윙필드라는 인물에 더 공감하도록 노력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한 가족을 통해 가족의 위기, 각 인물의 위기를 그려낸 작품인데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작품에 대한 논문, 의견도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연기하는 데 어려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작품 속 톰이라는 인물은 요즘 우리 불안 속 청년들, 88만원 세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연출가와의 두 번째 작업이었는데 어땠는지.
“너무 존경스럽고 경외심이 들었다. 연극을 하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의욕이 꺾이기도 하는데 한 선생님을 보면 에너지가 넘치고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다. 작품을 통해 한 걸음 성장하는 배우가 돼서 젊은 배우가 부족한 연극계를 이끌어갈 배우가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연극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다음달에는 김광보 연출가의 엠버터플라이가 두번째 앙코르 공연에 들어간다. 초재연 배우가 모두 총출동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유리동물원에 이어 또 재연 작품이다.
“사실 르네는 무대 위에서 열정을 발산할 수 있는 역할로 남자배우라면 욕심이 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감정을 다양한 색깔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다. 초·재연 배우가 다시 모이니 전보다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르네와 송 모두 3명의 배우가 연기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르네-송 아홉 커플을 볼 수 있다. 각각의 배우와 연기해보면 느낌이 다르다. 작품에 열정이 있는 배우들이 모이니 더욱 작품에 집중할 수 있다.”
-내 심장을 쏴라를 시작으로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엠버터플라이까지 김광보 연출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연극을 계속 할 수 있게 해준 분이다. 내 심장을 쏴라의 공개 오디션에 합격했다. 지금까지 해온 작품의 절반 이상을 김 연출가와 함께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고 늘 많이 배운다.”
-그동안 결핍있고 유약한 캐릭터들을 해 온 것 같다. 불만은 없나.
“나라는 배우 자체가 외모가 주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캐릭터 섭외가 들어오지는 않는다. 느끼는 대로만 표현하면 관객들에게 다소 건조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이 연극에 몰입하게 하려면 인물을 납득시켜야 할 수 있다고 본다.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찌질함, 추악함, 나약함을 끄집어내고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KBS공채탤런트 출신인데, 연극을 하게 된 계기는.
“처음부터 연극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독립영화도 해봤고 드라마도 출연해봤지만 인물, 장면에 대해 긴 시간을 고민하는 작업인 연극에 더 잘 맞았다. 좋은 배우, 작가, 연출,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점이 좋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작품에서 날 찾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내가 성장하고 있는 것은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연기를 보고 울기도 하고 치유도 받는 관객들도 있으면 좋겠고, 연극계에도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 아직까지는 방송이나 뮤지컬에 비해 연극은 대중적이지 않은데 연극을 열심히 해서 극장도 꽉 차고, 대중적으로도 인기 있는 연극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리딩 첫날 대본을 외워올 정도로 노력파라고 들었다.
“남들보다 특별히 열심히 하는 건 아니다. 대본을 많이 보면 저절로 외워진다. 무대 위 연기는 배우, 스태프들과의 약속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또 관객들이 먼저 배우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날카롭게 잡아내기 때문에 혹시 실수를 하더라도 작품의 완성도를 깨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려고 한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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