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해도 사실상 '그림의 떡'
퇴직금 국민연금 수령액도 감소
저임금 축소 등 안전망 필요 불구
정부 "고용 유연화 확대"만 주장
법제화 때 임금조정 구체 내용 없어
정부의 임금피크제 확대 노력에도 도입 사업장이 전체의 10%에 불과한 현실은 그만큼 임금피크제를 바라보는 노동계의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체계 변경 등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꾸려면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현재 노동계ㆍ경영계ㆍ정부가 참여하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안을 논의 중이나 민주노총은 “노동조건 하향평준화”라며 4월 총파업까지 결의한 상태다.
임금피크제 갈등 2년 전 불씨 그대로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갈등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2013년 4월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부터 갈등이 싹텄다. 당시 개정안은 권고수준이던 정년 기준을 60세 이상으로 법제화했다. 이로 인해 종업원 300명 이상 사업장ㆍ공공기관은 2016년부터, 300명 미만 사업장ㆍ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2017년부터 정년 60세가 적용된다.
그러나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조정 문제는 구체적인 내용 없이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넘겨버렸다. 결국 여야의 안일했던 합의 때문에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년 60세 우선 적용 시점이 다가오자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이 번지고 있다.
노후빈곤 우려 목소리 커
갈등의 불씨는 노후빈곤이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해도 권고사직 등에 대한 보호대책이 없어 사실상 정년 연장은 노동자에겐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노동자의 평균 1차 은퇴 연령은 53세다. 노동계는 법 규정을 교묘히 피한 해고 조치에 노동자들은 무방비일 수밖에 없고, 해고 이후에는 사회안전망 미비로 노동시장에서 완전 은퇴하는 60대 후반까지 비정규ㆍ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는 “정년연장 없이 고령 노동자의 총 임금 저하로 귀결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장 가장 높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퇴직금과 국민연금 수령액 감소 역시 노후에 악영향을 준다. 자녀의 취업 연령이 점차 늦어지는,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퇴직 전 3개월 평균임금과 근속기간으로 산정하는 퇴직금은 퇴직 전 낮아진 임금 때문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국민연금 역시 최대 매월 9만원까지 줄어든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헌수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과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지난달 연세대에서 열린 2015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임금피크제가 함께 도입되면 정년만 연장될 때보다 국민연금 수령액이 남성은 월 3만9,000원~9만원, 여성은 월 3만6,000원~7만원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사회안전망 확충 선행돼야
임금피크제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부족한 사회안전망부터 우선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정부도 올해 안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월급이 줄어든 노동자에게 최대 5년 동안 매년 1인당 1,08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방안을 마련해놨지만 한시적인 지원일뿐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핵심이 돼야 하는데, 정부는 고용유연화 확대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도 “저임금 노동시장을 줄이는 게 곧 복지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는 경영계 입장만 좇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연장은 기업 경영과 청년 실업 해소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 기업이 부담을 느끼지 않아야 근로자도 안정된 고용상태에서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고용을 실질적으로 확대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12년 발표한 ‘기업의 정년 실태와 퇴직 관리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중ㆍ고령자 고용의 증가가 청년층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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