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그리웠소. 김일성은 오늘밤 분해서 편히 못 잘 것이오.” 1967년 3월 22일, 북한의 고위 언론인이었던 이수근 중앙통신 부사장이 극적으로 북측 지역을 탈출하며 내뱉은 첫마디였다. 오후 5시,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군사정전위원회가 끝나자 이수근은 재빨리 UN군 대표였던 밴 크러프트의 세단 승용차에 올라탔고 40여 발에 이르는 북한 경비병의 사격을 피해 귀순에 성공했다. 남한에서 결혼과 함께 반공 강연을 이어가던 그는 69년 위조여권을 품고 캄보디아로 향하다 이중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체포됐고 그 해 5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05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이수근의 위장간첩 혐의가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 판단했고 2008년 12월, 서울고등법원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하며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1967년 3월 22일 하오 7시, 판문점에서 귀순한 이수근이 헬기편으로 용산 미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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