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공비 2억·공제조합 인사권 영향력
19명만 투표권… 돈으로 매수 다반사
모 화물운송업체 대표 황모(59)씨는 지난해 1월 회사 법인카드로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 화물차 사업자들의 전국 조직인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전화련) 소속 시도협회 이사장 3명에게 각각 200만원어치씩 건넸다. 이 가운데 전북협회 이사장 정모(64)씨에게는 별도로 현금 1억원을, 제주협회 이사장 김모(59)씨에게는 현금 5,000만원을 쇼핑백에 5만원권으로 넣어 건넸다. 전화련 연합회장 선거를 앞두고 자신을 회장으로 뽑아달라는 청탁을 하기 위해서다. 실제 충남협회 이사장이기도 한 황씨는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 경쟁자를 1표 차로 누르고 회장에 선출됐다.
무보수 명예직인 일개 연합회 회장 자리를 놓고 억대의 돈이 오가는 상황이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전화련 연합회장은 연간 약 2억원의 판공비를 사용할 수 있고 산하에 있는 화물자동차공제조합(직원 650여명)에 대한 사실상의 인사권을 가지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회장 선거를 앞두고 비리가 끊이질 않았던 이유다. 오죽하면 ‘회장에 당선되려면 10억원을 뿌려야 한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했다.
연합회장 선거가 돈 선거로 얼룩지게 된 건 선거제도의 맹점 탓도 있다. 전화련은 18개 시도협회의 연합체로 회원사만 1만여개(소속 차량 약 20만대)에 달하는 방대한 조직이지만, 시도협회 이사장 등 19명만 투표권을 행사 해 이 중 10표를 얻으면 당선되는 구조다. 몇 명만 포섭하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회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 돈으로 표를 사야 한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전화련 회장 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진 이사장들에게 총 1억5,000여만원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배임증재 등)로 황씨를 구속했다고 19일 밝혔다. 또 황씨로부터 상품권 200만원어치와 현금 1억원을 받은 정씨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하고, 현금 5,000만원을 받은 김씨 등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 종사자 전체의 발전을 위하는 전화련 존재 목적 자체가 저해될 수 있는 중대 범죄”라며 “다수가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하는 등 선거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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