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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자랑 해 봐"에 속타는 새내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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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자랑 해 봐"에 속타는 새내기들

입력
2015.03.1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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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부터 신입사원까지 친목도모 위한 시간이 되레 고역

상하관계 뚜렷한 직장선 거부 못해 "권위적 요소 많아 역효과 불러"

지난해 4월 한 중소기업에 입사한 1년차 직원 인모(29)씨는 요즘 퇴근 후 걸그룹 EXID 동영상을 보며 안무를 따라 해보곤 한다. 아직 회사 막내라 각종 행사에서 분위기를 띄울 때면 어김없이 ‘첫 타자’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인씨는 19일 “입사 직전에도 장기자랑을 위해 동영상을 보며 혼자 집에서 연습했다”며 “선배들의 요청을 거절하긴 곤란하고 항상 새로운 걸 보여줘야 되는 압박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엠티나 워크숍 등 행사가 집중되는 봄이 오면서 직장 및 대학 새내기들의 속이 타 들어가고 있다. 장기자랑은 동료 사이의 서먹함을 깨고 개인의 개성이나 존재감을 표현한다는 명목 하에 행해지는 일반적인 친목 도모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보여주기식 행사가 대부분 대학 신입생이나 직장 신입사원들에게 집중되는 탓에 단순한 압박감을 넘어 조직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올해 건국대 전자공학부에 입학한 이모(20)씨는 지난달 새내기 배움터에서 동기들과 함께 단체로 춤을 췄다. 이씨는 “말로는 강제로 시키지 않는다 해도 누가 그 상황에서 빠질 수 있겠느냐”며 “대학생활 시작부터 숫기 없는 이미지로 찍히는 게 싫어 억지로 춤을 췄다”고 털어놨다. 대학원생도 예외는 없다. 지난해 서울 시내 유명 사립대 지난해 한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A씨는 “오리엔테이션에서 대학 1학년 때처럼 연습할 시간을 주고 장기자랑을 시켜 놀랐다”며 “분위기를 띄우는 장치라고 하지만 당하는 후배 입장에선 반감이 더 컸다”고 말했다.

그나마 학창 시절에는 본인 의사에 따라 장기자랑을 거부해도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사내 평판이 중요한 평가 요소인 직장에서 상사가 주는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취업포털 미디어통이 직장인 446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워크숍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47.6%가 ‘상사가 장기자랑이나 건배사를 시킬 때’를 꼽았다. 대기업 2년차 직원인 박모(24)씨는 “신입 연수 시절 전무가 노래를 시켰는데 동석한 부장들이 주는 압박에 등 떠밀려 결국 노래를 불렀다”며 “윗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그 자리에 있던 신입사원 18명도 단체로 율동을 해야 했다”고 푸념했다. 경력사원 역시 장기자랑 요청을 피해 갈 수 없다.두 달 전 IT회사로 이직한 B(27)씨는 세미나 때 갑작스레 노래를 해보라는 요청에 당황했다. B씨는 “순간 불쾌해져 ‘그걸 꼭 해야 되냐’며 거절했더니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랭해졌다”고 말했다.

장기자랑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수요가 늘자 단기간에 춤과 노래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학원들도 성업 중이다. 일부 댄스학원은 아예 2~3주짜리 ‘댄스장기자랑’ 프로그램을 개설해 시간당 12만~15만원을 받고 있다. 강남의 한 댄스학원 홈페이지에는 국내 대기업은 물론 외국계 회사와 유수 대학 등 학원을 거쳐간 수백여 개 단체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자랑이 집단 구성원들과 교류하는 사회화 과정의 일부이지만, 권위적 요소가 강하게 배어 있어 역효과가 훨씬 크다고 지적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친목 도모를 위한 여흥은 처음 보는 이들이 유대감을 느끼도록 돕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여흥을 잘 하거나 하고 싶은 동료에게 기회를 주고, 부담을 느끼는 이들은 부드럽게 넘어가는 조직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직장 및 대학 새내기들이 엠티나 워크숍 등의 행사에서 '장기자랑'을 강요 받는데 대해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직장 및 대학 새내기들이 엠티나 워크숍 등의 행사에서 '장기자랑'을 강요 받는데 대해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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