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혼란 최소화 위해 전체 과목ㆍEBS 연계율 70% 유지
"실수 여부로 등급 결정 안 되게" 난이도 조절로 물수능 논란 차단
EBS교재 外 30%서 변별력 확보, 상위권 학생들 경쟁력 높아질 듯
지난해 온라인 서점에는 EBS 영어 교재의 지문을 한글로 요약해 정리한 책이 등장했다. ‘출제가능성이 높은 베스트 지문만을 뽑아 쉽게 도식화해 한 방에 기억할 수 있도록 한글로 정리했다’, ‘시험장에서 영어 지문을 보자 마자 지문의 내용과 핵심이 딱 3초면 생각나게 한다’는 홍보 문구와 ‘6,9월 모의고사에서 출제된 EBS 연계지문은 다시 출제되지 않으므로 모두 생략했다’는 친절한 안내까지 곁들여졌다.
한 사교육업체의 영어 강사는 첫 문장만 영어로 돼 있고 나머지는 모두 한글 지문으로 구성된 교재를 사용하며 아예 “시험장에 가서 EBS 지문 내용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며 “한글 해석을 달달 외우라”고 노골적으로 조언하기도 했다.
이런 책과 강의가 등장한 것은 EBS 교재의 수능 연계율을 70%로 정한 정책 때문이다. 특히 영어 영역은 EBS 지문을 그대로 활용한 문항이 70% 출제돼 이 같은 편법이 성행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수능 영어 영역의 만점자 비율이 역대 최고인 3.37%를 기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수능 영어의 EBS 연계 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17일 교육부 산하 수능개선위원회가 발표한 대학수학능력 시험 ‘난이도 안정화 방안(시안)’에는 EBS 영어 교재의 지문을 수능에 그대로 활용하는 문항의 비율을 낮추는 내용이 담겼다. 학생들이 영문이 아닌 한글 해석본을 암기하는 형태로 수능 영어를 준비하는 부작용을 줄이고, ‘물수능’ 논란이 일었던 영어 영역의 변별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시안에는 EBS 지문을 그대로 활용한 문항을 올해 50%, 내년 30%로 낮추고, 대신 EBS 교재와 유사한 내용의 지문을 올해 20%, 내년 40%로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안이 제시됐다. 예컨대 EBS 교재에 청소년 흡연율에 대한 통계 지문이 나왔다면 수능에는 전체 흡연율에 대한 통계 지문을 넣는 식이다.
또 다른 안은 한글 해석본 암기로 풀이가 가능한 유형인 ‘대의파악’(목적, 주장, 주제 찾기)과 ‘세부정보’(지문과 일치하는 내용 찾기)를 묻는 문항에서 EBS 교재 지문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이사는 “영어는 EBS 지문을 그대로 출제하지 않고 유사지문을 활용할 경우 지난해에 비해 다소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만 전체 수능 과목과 EBS 교재 연계율은 2017학년도 입시까지 현행 70%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연계율을 단기간에 조정할 경우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개선위원회는 2018학년도 이후 수능의 전체적인 연계 비율, 방식, 연계정책 유지 여부는 수능 중장기 개선방안 마련 때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수능개선위가 “수험생의 실력이 아닌 실수 여부로 등급이 결정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수능의 난이도를 적정하게 안정화시키겠다고 밝혀 올해 수능은 지난해보다는 어렵게 출제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수능개선위는 과거 시행된 수능과 모의평가 문항에 대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기초분석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수능분석위원회의 심층분석을 통해 응시집단의 특성과 수준을 파악한 뒤, 적절하고 정교한 난이도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영역별로 고난도 문제가 올해 수능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져 지난해 처럼 ‘물수능’ 논란은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올해는 작년 수능때 역사상 최고 만점자 비율을 기록한 수학B형과 영어가 어려워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능이 어렵게 출제될 경우 상위권 학생들의 수능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수능 점수로 내신 불이익을 극복할 가능성도 작년에 비해 높아졌다는 평가다. 특히 EBS 교재와 연계되지 않는 30%의 문항에서 변별력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수능개선위원회의 이런 방안은 지금까지 정부가 공언해 온 ‘쉬운 수능 기조’를 뒤집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 또다른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희동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수능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지문을 그대로 출제하는 문항 수를 축소한다거나, 연계율을 조정한다 해서 난이도가 안정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난이도 안정화라는 선언적 구호에 그쳐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수능 개선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거듭되는 난이도 조절 실패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안 제시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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