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
고교야구로 전국이 들썩이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 산업화로 고향을 떠나 서울로 밀려온 사람들은 서울운동장야구장(동대문운동장야구장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헐렸다)에서 고교야구에 열광하며 향토애를 발산했다.
고교야구 전성기를 관통했던 대회 중 하나가 한국일보 주최 봉황대기였고, 봉황대기의 흥행에 한 몫 했던 팀이 재일동포야구단이었다. 마흔을 넘은 사람들이라면 어렴풋이 추억할 만한 명칭이다.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1982년 여름 봉황대기 결승전에 올랐던 재일동포야구단 멤버들의 소재를 찾아 그들의 추억담을 들으며 재일동포 야구인들의 삶과 재일동포의 정체성을 탐색한다.
멤버들과의 접촉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어떤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인지 제작진을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다. 한국어에 능통하고 제작진과 예전 영화로 인연을 맺은 한 멤버가 물꼬를 튼다. 82년 고국에서 열리는 야구대회 출전을 위해 급조됐던 야구단의 선수들은 그렇게 회합을 하고 추억을 나눈다. 그들의 사연 속엔 재일동포들의 신산한 삶이 스며있고 재일동포를 바라보는 고국의 편견이 담겨있다. 특별했던 여름의 기억을 과거에 묻어두었던 멤버들은 영화화를 계기로 30여년 전 뛰었던 그라운드에 다시 오를 기회를 가지게 된다.
야구를 좋아하고 한국 야구사를 제법 안다는 사람도 놀랄만한 내용들이 꽤 있다. 1970년대 남한이 북한 축구에 맞서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것처럼 90년대 북한이 재일동포에 기대 남한 야구에 대적하려 했다는 비사가 나온다. 북한에서 야심 차게 만든 야구장이 식량난 때문에 보리밭으로 변했다는 증언에 가슴이 아프다. 한국 실업야구의 큰별이었던 고 배수찬씨와 김성근 한화 감독의, 중앙정보부와 얽힌 소슬한 사연은 한국 현대사의 비정이 야구인에게도 예외가 없었음을 시사한다.
1950년대부터 고국 방문 형식으로 이뤄진 재일동포야구단의 역사, 재일동포 야구인이 한국 야구계에 미쳤던 긍정적인 영향 등도 일별할 수 있다. 7년 동안 이 영화를 준비하고 완성한 김명준 감독은 전작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2006)에서는 조총련계 학교 학생들의 삶에 카메라를 비췄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경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향한 시선이 여전히 따스하다. 좋은 야구 다큐멘터리이면서도 재일동포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물이다. 19일 개봉, 전체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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