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주도 민간인 불법사찰에 윤석만 전 포스코 사장 포함돼
사찰 피해 분노 표출했던 이총리, 사정수사 지휘로 MB정부에 반격
이명박(MB) 정부 시절 정권 실세와 정준양(65) 전 포스코 회장의 유착 의혹이 검찰의 주요 수사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정 전 회장이 MB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포스코 회장에 올라선 과정이 재차 주목 받고 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MB정부 인사들과 대립 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도 과거 사찰 피해를 당한 경험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15일 본보가 입수한 MB정부 시절 민간인 불법사찰을 자행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한 검찰 수사자료에는 정 전 회장의 취임 전후 권력의 전횡이 자세히 나와 있다. 또 불법사찰 피해자를 조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당시 이 총리의 분노가 어떠했는지가 기술돼 있다.
MB정부의 실세로 ‘왕차관’이라 불렸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주도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대상자 중에는 2008년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도 포함돼 있었다. 검찰의 압수수색 자료는, 윤 사장에 대한 동향 파악이 2008년 12월18일 ‘윗선’의 하명으로 착수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야인이던 박 전 차관은 2008년 말부터 2009년 1월까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이구택 포스코 회장을 접촉한 데 이어, 차기 회장 후보였던 윤석만 포스코 사장과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을 잇달아 만났다. 포스코 회장 인사에 정부가 개입하려 한다는 의혹이 일자 박 전 차관은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박 전 차관이 2009년 1월20일 국무총리실 차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고 같은 달 29일 포스코 CEO후보추천위워회는 정 사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천했다. 윤 사장은 당시 “박영준씨가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라며 회장 후보를 포기하라고 했다.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도 전화를 걸어와 같은 뜻을 밝혔다. 정부 쪽에서 정당한 절차 없이 정준양을 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MB정부의 노골적인 밀어주기로 포스코 수장에 오른 정 전 회장이 이후 정권 실세의 요구를 쉽게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해 2009년 2월2일 보고한 포스코 관련 동향 보고서에는 “최근 포스코 정기 이사회의 이사진 인사는 이구택 전 회장의 인맥과 참여정부와 코드를 맞춘 인사들이 대거 임명돼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실패했다는 평가와 함께 직원들의 불만이 늘고 있다”는 평가도 담겨 있어 포스코 인사에 대한 동향 파악이 지속적으로 이뤄졌음을 내비쳤다.
정 전 회장은 MB정부 말기인 2012년 3월 임기 3년의 회장으로 연임됐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이완구 총리는 충남도지사 시절 ‘충남 홀대론’을 제기했다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대상에 올랐다. 이 총리는 도지사 시절인 2008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한 공약사항을 이행하라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훗날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이 총리는 “2010년부터 검찰에서 나를 내사한다는 소문이 정치권에서 돌았고, 친구나 친척 및 비서실장 등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뒷조사가 있었다”라며 “계좌추적도 해서 조사 받았다고 하니까 내가 피해의식을 갖게 되고, 나로 인해 주변사람들이 괴롭힘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심적 고통을 넘어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나 같은 민선 도지사도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사생활이 모두 감시의 대상이 됐는데 ‘일반인들은 어떻겠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공포감이 들고 분노를 느꼈다”며 “이 일은 국가 공권력이 사사로이 작동한 것이고, 정체불명의 공권력에 의해 헌법적 가치가 훼손된 상황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인 바,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물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혈액암의 아픔을 겪은 일이 당시 MB 정부 사찰 탓이라고 사석에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이 총리가 전 정권을 겨냥한 사정수사를 진두 지휘하는 것도 MB정부에 대한 앙금 때문이란 해석이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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