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에게 죄를 지은 것 같아요, 이제 아프면 어디에다 연락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15일 오전 봄 기운이 도는 청명한 날씨인데도 우리나라 최서남단인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1구 마을에는 주민들은 온데간데 없고, 한산하면서 적막감마저 돌았다. 최근까지 방파제 공사로 활기를 띠고 있었는데, 지난 13일 밤 가거도 응급환자를 이송하러 왔다가 추락한 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 소속 B-511 헬기 사고가 준 충격 때문이다.
더욱이 사고 원인이 외부 관광객이 아니라 섬을 지키고 있는 원주민 임모(7)군 이라는 인식 때문에 주민들은 외부 출입도 꺼리고 입도 굳게 닫아 버렸다. 해마다 주민들의 수호신으로 생각했던 해경대원들의 생사는 고사하고 실종자까지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주민들은 비통에 잠겨있는 등 충격을 훨씬 더하다.
가거도 보건소 정찬혁 소장은“임 군의 몸 상태를 알고 싶어도 부모들의 연락이 되지 않아 건강이 회복됐는지도 모르고 있다”면서“마을 주민들까지도 사고와 관련해 어떤 말이라도 꺼려한다”고 말했다. 주민 A(57)씨는“일부 어민들은 스스로 실종자를 찾기 위해 어선을 몰고 해상으로 나가고 있지만 주민 모두가 죄인처럼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고 있다”며“해경 직원들은 고사하고 주민들 간에 눈치를 보고 있어, 부모들이 모셔져 있는 고향을 떠나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났다.
실제로 가거도는 주민 490여명은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태풍으로 가슴을 졸이고 살아야 하고, 교통 불편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섬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어 연중 발생하는 안개와 동거동락하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끼는 해무는 주민 건강에 악영향까지 끼쳐 아픈 사람도 많다. 봄철 불청객 황사도 제일 먼저 닿는 곳이 가거도로, 1년 내내 맑은 날씨는 2~3개월 밖에 없다.
가거도 출장소 김혁재(40)씨는“하루 4~5시간, 한번 다니는 여객선이 끊긴 이후 야간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수호신이나 다름없는 해경 경비정이나 헬기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겨왔는데, 이제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다행이 오늘 임군이 퇴원해 목포에서 회복중에 있다”면서“비통해 하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가히 사람이 살 수 있다’해서 이름이 붙여진 가거도(可居島)는 인구 493명으로 우리나라 맨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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