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9년 만에 방한

2009년의 작품 '익사' 국내 출간

아버지를 알기 위해 나선 소설가

전범국 일본 뒤에 숨은

천황주의ㆍ남성주의적 문화 고발

“저는 2013년 쓴 소설로 제 문학인생을 종료했습니다. 앞으로는 일본과 세계의 평화를 도모하는 일에 매진하며 그와 관련된 글들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80)가 한국을 방문했다. 2006년 고려대의 초청으로 방한한 지 거의 10년만이다. 이희호 여사의 초청으로 한국을 다시 찾은 작가는 12일 연세대에서 열린 ‘연세-김대중 세계미래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 데 이어 13일 자신의 소설 ‘익사’(문학동네) 출간기념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작품에 녹여 내는 한편 일본 관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 핵 반대,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는 등 사회 운동에도 활발히 참여, 일본의 양심 있는 지성으로 불린다. 1970년대 김지하 시인이 투옥됐을 때 석방을 촉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9년 쓴 장편소설 ‘익사’는 지금까지 작가가 작품에 표현하고자 했던 자국에 대한 비판과 작가 개인의 문제가 한데 녹아 있는 소설이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내 작가인생 3기에 속하는 작품”이다.

작가도 동의하는 바, 오에의 작품세계는 흔히 1, 2, 3기로 분류된다. 열살 때 일본의 패전을 목격한 작가는 극단적 반미에서 극단적 친미로 돌아선 고국의 모습에 혼란스러워하는 소년의 감수성을 초기 작품에 담았다. 사회비판적 소설에 몰두하던 작품세계는 작가의 20대 후반 지적 장애를 가진 장남 히카리가 태어나면서 일대 전환을 맞는다. 이때부터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소설에 개입되는데, 일각에서는 사소설(일본 근대소설의 한 종류로 작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일상의 삶에서 소재를 얻어 쓴 소설)이란 비판도 나왔지만 개인의 고통을 전후 세대의 인권 유린을 폭로하는 작업으로 승화시켰다는 게 중론이다.

9년 만에 한국을 찾은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13일 소설 '익사'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에는 '만년양식집'을 마지막으로 소설은 그만 쓰고 평화를 위한 행동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작가가 말한 3기는 40대 들어 1기와 2기의 특징을 한데 아우르게 된 시기를 뜻한다. 그는 “내 소설의 주제와 형식이 모두 담겨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3기에서 주로 나왔다”고 말했다. 특히 ‘익사’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부각된다는 점에서 오에 문학의 원점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아홉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왜 갑자기 죽어버렸을까, 계속 생각해왔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분신으로 보이는 소설가 조코 코기토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난다. 유년 시절 강에서 아버지가 탄 배가 뒤집혀 익사하는 것을 목격한 코기토는 아버지의 죽음을 주제로 한 소설로 부친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육십 노인이 다 되어 시작한 집필 작업은 쉽지 않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엔 객관성이 결여돼 있고, 결정적으로 장애인 아들 아카리와 빚는 갈등은 아버지와 자신, 자신과 아들이라는 두 부자관계를 풀어내야 하는 과제를 떠안긴다. 작가는 아버지를 전형적인 천황주의자로, 아들 코기토를 패전 이후를 사는 청년으로 묘사함으로써, 현대의 일본인들이 전범국가로서의 고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우나이코라는 여성은 일본 사회의 그릇된 남성성에 대한 비판이자 위안부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생각이 극단적으로 투영된 인물이다. 일본 고위관료인 큰아버지에게 강간 당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도중 임신 사실을 깨닫게 된 우나이코에 대해 작가는 “국가의 강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것이 한국의 위안부들과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 오에는 “그렇다”며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게 된 배경에는 천황절대주의와 남성주의적 문화가 도사리고 있는데 이는 여성차별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위안부 문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본의 사회구조와 국민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일본 정부와 국민은 그에 대해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으며, 이런 사죄를 요구하는 움직임에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 통역은 ‘익사’의 역자인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가 맡았는데, 그는 최근 ‘제국의 위안부’로 논란에 휘말렸던 터라 눈길을 끌었다. 박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바탕으로 쓴 저서에서 일본군의 납치보다 조선인의 취업 사기로 인한 위안부가 더 많았으며 ‘위안’을 애국으로 여겼던 위안부도 있었다고 언급해 뭇매를 맞았었다.

오에는 자신의 남은 인생 계획을 밝히는 것으로 간담회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는 “2013년 쓴 ‘만년양식집’이 내 마지막 소설”이라며 “앞으로는 집회에서 하는 발언을 글로 정리한 에세이 등을 쓰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쓴 르포르타주 ‘히로시마 노트’와 ‘오키나와 노트’를 읽어 달라며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만년양식집’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급변한 일본 사회의 모습을 담은 소설로, 아직 국내 출간 전이다.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내년 경 문학동네에서 출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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