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독립성·원칙 훼손당해 "경기회복 위해 불가피" 평가 속
가계빚·부동산 거품 확대 우려
한국은행이 시장 예상을 뒤엎고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하면서 사상 초유의 기준금리 1% 시대가 열렸다. 금융통화위원 7명의 만장일치 동결 행진을 4개월째 이어오다 제대로 된 ‘깜박이’ 한 번 켜지 않은 채 불과 한 달 만에 급작스럽게 인하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여론의 전방위 압력에 떠밀려 통화당국의 독립성과 원칙을 무너뜨리고 백기 투항했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갈수록 꺾이고 있는 경기 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가계부채와 부동산 거품 확대 등 우리 경제에 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하다. ★관련기사 2ㆍ3면
한은은 12일 이주열 한은 총재 주재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종전 연 2.00%에서 1.75%로 인하했다. 지난해 8월과 10월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데 이어 5개월 만에 다시 0.25%포인트 더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사상 처음으로 연 1%대로 떨어졌다. 7명의 금통위원 중 5명이 금리 인하를 주장했고, 금리 동결 의견을 고수한 위원은 2명에 그쳤다.
이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 “성장세가 당초 전망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이고 물가상승률도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고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두 차례 금리 인하와 정부의 경기 부양 노력에도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자 금리 인하 카드를 꺼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급작스러운 금리 인하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달 소수의견과 함께 금리 인하 시그널을 시장에 준 뒤 빨라도 내달에야 금리 인하에 나설 거라는 시장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은의 독립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외부의 압력에 따른 선택의 성격이 짙다는 의구심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전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전세계적으로 통화 완화 흐름 속에 우리 경제만 거꾸로 갈 수 없다”라며 노골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같은 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디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하면서 우회적으로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여기에 일각의 조기 인하 여론까지 더해졌다.
금리 인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시각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극명히 엇갈린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금리 인하로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며 “소득증가율보다 부채증가율이 두 배 가까이 빠른 상황이 가속화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반면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인하 방향은 맞고 추가 인하 신호도 보내야 한다”라며 “가계부채는 총량이 늘지 않도록 미세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리 1% 시대가 열리면서 은행 예금 퇴조와 주식 펀드 등 위험상품에 대한 관심 증가(금융), 월세 가속화와 주택매매 증가(부동산) 등 재테크 지형의 지각변동도 예상된다. 다만 이날 깜짝 인하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은 보합세를 유지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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