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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일의 ‘전설’ 윤동주

입력
2015.03.1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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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전설’이 있다. 내용은 역시 사람이다. 전설을 살펴보면 각 나라 국민의 모습이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전설을 분석해 보면, 또 다른 메시지가 뜬다. “네 장점을 이야기해줘. 그러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줄게!” 라는 주문이 거기에도 통용된다. 그래서 전설은 각 나라 국민 내면의 모습까지 총체적으로 알려주는 기본 자료가 된다.

여기, 한국의 현대사를 빛내는 전설 중 하나가 된 사람이 있다. 70년 전인 1945년 2월 16일에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만 27세의 젊음으로 옥사한 한국인 사상범 ‘윤동주 시인’이다. 그가 옥사한 지 6개월 뒤에 일본의 패전으로 식민지였던 조국은 해방되었고, 새로 일어선 조국에서 그의 유고 시집이 나왔으며, 시집이 나온 지 수십 년 만에 그는 ‘국민시인’으로서 한국의 현대사에 크게 떠올랐다. 하나의 ‘전설’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가 이룩한 전설에 또 다른 요소가 추가되고 있다. 과거 종주국이었던 일본의 현대사에도 그의 이름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일본인들이 윤동주의 시를 읽기 시작했다. 번역으로 그의 시를 접한 일본인 독자들 중에서 그의 시를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우는 이들이 나타났다. 90년대는 NHK 제의로 KBS가 함께 윤동주 시인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양국에서 상영했다. 내가 쓴 ‘윤동주 평전’의 일본어 번역본도 축약본과 완역본으로 각기 발간되었다.

또한 일본인들은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가 처음 유학했던 릿쿄대학이 있는 도쿄(東京), 도시샤대학으로 전학하여 공부하다가 ‘조선독립운동(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 받았던 교토(京都), 옥사한 감옥이 있는 후쿠오카(福岡) 등 그가 머물렀던 일본 대도시 세 곳에서 일본인들의 모임이 자발적으로 결성되었다.

그들은 윤동주 시인과 관련 있는 현장을 찾아내고, 그 사실을 알리는 비석을 세우고, 관련 증언을 수집하여 그의 생애를 더 면밀하고 정확하게 연구하고 복원하는 등, 그를 기리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 릿쿄대학에서는 그의 이름을 건 장학금을 만들어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주고 있다. 최근에는 아사히신문이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긴 사설을 게재했다.

일본인 독자들의 활동 중 압권은 해마다 윤동주 시인의 기일이면 추모행사를 정성껏 치르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의 옥사 60주기였던 2005년에는 세 도시에 있는 ‘윤동주 시인 모임’들이 연합하여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치렀다.

옥사 70주기를 맞은 올해 나는 도쿄의 추모행사에 강연자로 초빙 받아 ‘윤동주 시인이 꿈 꾼 세상’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아! 윤동주 시인이 이제는 일본에서도 하나의 ‘전설’이 되고 있구나!”하는 깊은 감회였다. 그가 생전에 드나들었던 릿쿄대학 채플을 가득 메우고 통로에도 의자를 놓고 앉은 일본인 청중(그들은 행사 참석비 1,000엔씩을 내고 입장했다)을 보면서 양국 국민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윤동주 시인이라는 ‘전설’의 실체를 실감한 감동은 매우 컸다.

현재 공식적인 한일관계는 무겁고 흉하게 삐걱거리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정치적 목적을 지닌 집권층이 아닌 일본의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윤동주 시인이 하나의 ‘전설’로 떠오르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봄날 햇살처럼 환하고 신선하고 매우 기쁘다. 그가 일본 국민들에게도 ‘전설’이 되어간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국민성 사이에 어떤 공통분모가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청결하고도 아름다운 흠 없는 생애와 서정성 뛰어난 강인한 의지의 시로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국민시인 윤동주, 그가 일본 국민들의 사랑도 받고 있는 것은 그들의 성숙한 내면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다.

송우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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