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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유니폼 디자인, 유럽서도 주목한다"

입력
2015.03.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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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기라는 상품을 어떻게 포장해 내놓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무궁무진해진다. 스포츠 산업화 속 스포츠와 디자인의 결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총 10회에 걸친 '스포츠, 디자인을 입다' 기획을 통해 한국 프로스포츠의 가치를 높인 사례를 조명한다.

“과거 한국에서 나온 유니폼들은 유럽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반대입니다. 오히려 유럽 국가들이 K리그 유니폼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4일 서울 성북구 험멜코리아 사옥에서 만난 소렌 슈라이버(60·덴마크) 험멜 사장은 험멜코리아에서 제작한 K리그 유니폼에 대한 애정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는 “전북의 유니폼은 이길 수밖에 없는 디자인이다. 인천의 유니폼은 색감과 재질에서 굉장히 쿨(cool)한 매력이 묻어나는 유니폼”이라며 각 구단별 특성을 살린 유니폼 디자인을 설명하기 바빴다.

유니폼 디자인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는“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디자인이 없는 밋밋한 흰색 티셔츠만 입어왔지만 1984년 험멜이 처음으로 디자인을 입혔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자부심은 이제 레알 마드리드에서 K리그로 넘어왔다. 그는 “현재 우리 브랜드가 진출해 있는 28개국 중 한국보다 디자인을 잘 하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올해 험멜코리아의 K리그 용품 스폰서 점유율은 무려 30%. 총 23개 팀 중 K리그 챌린지에 뛰고 있는 자사 운영 구단 충주 험멜을 포함한 7팀의 유니폼에 ‘험멜’을 새겨 넣었다. 이 같은 험멜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업계에서는 ‘각 구단에 소홀해 지는 것 아니냐’ 는 반응부터‘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까지 있지만, 일단 팬들은 험멜에서 내놓은 유니폼 디자인 공개될 때마다 만족감을 드러냈다. 축구팬들 사이에선 ‘신’을 의미하는 ‘갓(god)’과 브랜드명을 조합한 ‘갓험멜’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한국을 찾은 스포츠브랜드 험멜 사장 소렌 슈라이더.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한국을 찾은 스포츠브랜드 험멜 사장 소렌 슈라이더.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성의 담긴 디자인”…비결은 소통과 애정

험멜의 유니폼 디자이너 조주형(31) 씨는 이 같은 축구팬들의 반응에 “K리그 역사의 흐름에 함께 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웃어 보이며 “스토리텔링은 유니폼 디자인의 생명과 같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전북 유니폼에 전주성의 기와 모양과 역사를 담은 20주년 기념 엠블럼을 넣어 호평 받았던 그는 이번 시즌에도 각 구단의 상징을 세련되게 녹여냈다. 인천의 유니폼엔 기존의 검정과 파랑의 단순한 스트라이프 패턴에서 벗어나 인천의 한자 ‘川’의 3획 구조를 따 파란색을 3가지 색상으로 나누어 변화하는 인천의 역동성을 표현했다. 올해 처음 디자인을 맡은 포항 유니폼에도 지역의 상징과 팬들의 결집력을 담아냈다.

포항 팬 한혜진(34)씨는 “지난 시즌의 디자인에 비해 훨씬 세련된 디자인”이라며 “팀의 전통과 상징들을 잘 살린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 씨는“팬들 사이에서는 뒷목 부분의 ‘우리는 포항이다’라는 문구나 모기업 포스코(POSCO) 마킹에 들어간 실버 컬러 속 밀리터리 패턴은 구단 정체성을 고려한 세심한 디자인이라는 평이 많다”고 말했다. 수년간 험멜이 디자인한 유니폼을 지켜본 전북과 강원의 팬들도 “이제 믿고 사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초 웹디자이너로 험멜에 입사한 조주형 씨는 지난 2011년 5월 임원진과의 면담에서 프로팀 유니폼 디자인에 참여해보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고, 조 씨가 내놓은 디자인이 경남과 전북 유니폼으로 채택 돼 본격적인 유니폼 디자이너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 후 조 씨의 삶은 K리그에 맞춰져 있다. 그는“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된 유니폼 디자인이지만 이제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며 “유니폼 디자인에 대한 구단과의 소통과 고민은 1년 내내 이어진다. 우리가 맡지 않은 다른 팀 유니폼도 내가 맡게 되면 이렇게 해보겠다는 구상도 항상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브랜드 험멜의 본사 대표 소렌 슈라이더(가운데)와 험멜코리아의 변석화 대표(왼쪽), 조주형 디자이너(오른쪽).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스포츠브랜드 험멜의 본사 대표 소렌 슈라이더(가운데)와 험멜코리아의 변석화 대표(왼쪽), 조주형 디자이너(오른쪽).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변석화(53) 험멜코리아 대표는“정답일 지는 모르겠으나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유니폼이라 더 좋은 평가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변 대표는“조주형 디자이너를 비롯한 대부분의 직원이 평소에도 축구를 자주 즐긴다”며 “아무래도 유니폼을 많이 입고 뛰어보는 젊은이들이기에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성에 대한 고민도 한 번씩은 더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 “K리그, 무명 브랜드엔 기회의 무대”

험멜은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조기축구 유니폼’의 대명사였다. 생활체육인들에게 대중화는 됐지만 중저가 브랜드로 포지셔닝 된 탓에 유명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K리그 유니폼 후원 협찬이 기회가 됐다. 15년 전 울산 현대를 후원하기 시작한 뒤로 점차 투자 규모를 확장했다. 특히 1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 온 전북 현대가 2009년 팀 창단 후 첫 승을 기록한 후 2011년과 지난해까지 세 차례 우승하며 험멜의 위상도 동반 상승했다. 변 대표는 “K리그의 머천다이징 시장이 작아 투자대비 가시적 효과는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고 말하면서도 “험멜 유니폼을 입은 구단들의 활약으로 브랜드 위상에 대한 상승 효과는 체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험멜처럼 중저가 브랜드로 인식됐던 국산 브랜드 키카(KIKA) 역시 K리그 구단 후원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 축구전문 디자이너 장부다 씨와 손잡고 울산 현대 유니폼을 획기적으로 디자인 해 축구팬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키카는 올해까지 최근 3년간 제주 선수들에 자사의 유니폼을 입혔다. 키카 박선재 팀장은 “국내 브랜드의 장점은 구단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K리그 구단에겐 팀 정체성을 더 명확히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업체 입장에서는 사업 확장의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K리그 챌린지 안양을 시작으로 올해 고양, 안산의 유니폼 후원업체가 된 자이크로의 관계자 역시 “사실상 신생 브랜드였지만 안양 후원 이후 생활체육인들 사이에서의 인지도를 빠르게 키워갈 수 있었다”며 체감 효과를 전했다.

● 팬심(fan心) 품고 거리를 달리는 유니폼

이처럼 인지도 낮은 브랜드들이 참여해 각 구단에 충분한 공을 들이다 보니 구단의 열성팬이 직접 디자인 한 유니폼도 탄생했다. 심플한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던 성남FC의 유니폼은 성남의 오랜 팬이자 웹툰 작가로 활동중인 김근석(36)씨의 작품이다.

성남 관계자는 “아르볼의 국내 제작업체와 유니폼 제작을 진행 해 디자이너 선정과 팬들의 의견 공유 등이 보다 자유로웠다. 지난 시즌까지의 유니폼에 대한 팬들의 부정적 반응이 있어 이번 시즌 유니폼은 오랜 성남 팬 김근석 씨 에게 맡기게 됐다”며 김 씨가 디자인에 참여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성남 일화 시절의 유니폼(왼쪽)과 김근석 씨가 디자인 한 성남FC의 2015년 유니폼. 한국일보 자료사진
성남 일화 시절의 유니폼(왼쪽)과 김근석 씨가 디자인 한 성남FC의 2015년 유니폼. 한국일보 자료사진

‘샤다라빠’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김 씨는 “성남의 유니폼 디자인 개선은 성남 팬들의 숙원이었다”면서 “구단이 팬과의 소통을 키워가고자 하는 노력을 느낄 수 있어 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김 씨의 디자인에 고려된 요소는 선수의 경기력과 심미적 효과 외에 또 다른 한가지가 숨어있다. 바로 ‘대중성’이다.

시민구단 전환 이전까지의 성남 유니폼에는 노란 원색 바탕에 일화의 간판 음료 ‘맥콜’또는 ‘삼정톤’이 전면에 새겨져 팬들의 불만이 컸다. 김 씨는 “오래 전부터 평상시에도 입고 다닐 수 있는 유니폼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올 시즌 유니폼에 상업광고 대신 공익 광고인‘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 ·서민 부채 탕감 프로젝트)’가 들어가 디자인이 한층 완성된 느낌”이라고 전했다.

험멜의 슈라이더 사장 역시 김 씨의 의견과 같았다. “이제 K리그 유니폼의 디자인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거듭 강조한 그는 “등산복도 패션아이템이 된 곳이 한국이다. 축구 유니폼은 어떠한 종목에 비해서도 평상복에 가깝다. 더 세련된 디자인으로 일상에 퍼진다면 K리그 흥행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최주호 인턴기자 (서강대 정치외교 3)

그래픽=백종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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