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섭(36ㆍKIA)라는 이름 석 자 없이 KIA의 2015년을 논할 수 없다. 새 지휘봉을 잡은 김기태(46) 감독이 입이 닳도록 ‘키 플레이어’로 언급했다면 그의 부활이 얼마나 간절한지는 설명이 필요 없다.
지난해 11월 자원 참가한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훈련부터 오키나와 전지훈련까지 최희섭이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토록 운동에만 매진한 적은 없었다. 최희섭은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비쳐질지 모르겠다”면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 때문에 부담감보다는 감독님의 기대처럼 어떻게든 팀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야구를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최희섭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는 이는 다른 팀에도 있다. 절친 박용택(36ㆍLG)이다, 그는 을미년을 시작한 1월1일 “(최)희섭이와 2009년처럼 둘 모두 좋은 활약을 펼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79년생으로 양띠인 둘은 고려대 98학번 동기로 동갑내기 이상의 죽마고우다. 박용택이 고려대 입학 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면 최희섭은 광주일고 시절부터 ‘초고교급’으로 고교 무대를 평정했고, 대학교 1학년을 마친 뒤 메이저리그 무대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후 인생 궤적은 달라졌다. 2002년 LG에 입단한 박용택은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 승승장구했다. 최희섭은 한국 최초의 빅리그 야수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2007년 고향 팀 KIA로 돌아온 뒤에 부상과 부진, 개인사가 겹치며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최희섭도 박용택처럼 2009시즌은 잊을 수 없다. 박용택이 3할7푼2리의 타율로 타격왕에 올랐던 그 해 최희섭은 ‘3할(0.308)-30홈런(33개)-100타점’으로 팀의 통산 10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최희섭은 “야구를 못할 때도, 1군에서 뛰지 못할 때도 늘 (박)용택이를 응원했다. 워낙 욕심이 많은 친구라 성공할 줄 알았다”면서 “올해는 나도 열심히 해서 둘 모두에게 소중한 시즌이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꺼냈다.
박용택은 지난 겨울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총액 50억원에 계약한 반면 최희섭은 연봉 백지 위임 끝에 7,000만원에 백의종군했다. 최희섭은 “오랜만에 훈련을 많이 해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는 좀 아프더라도 참고 뛰기로 했다”면서 “구체적인 성적을 말하기보다 시즌 끝까지 남아 있기만 한다면 분명 팀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각오를 전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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