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가 기부 대상 아니고 언론인 적용도 위헌 아니다
국민 69.8%가 바람직 평가, 비례 원칙·평등권 침해 없어"
"이해충돌 방지 규정 빠져 오히려 원안 훼손 아쉬워
법 개정 언급은 성급한 판단, 언론인 탑압 도구 사용엔 경계"
김영란(59)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10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과 관련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직자가 불우이웃도 아니고, 자선기부를 받아야 할 대상도 아니잖은가”라며 “(이제는) 각자 자기 것을 계산하는 습관을 들이자, 그게 사회상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서강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법 통과에 대한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김영란법은 국회에서 원안 수정을 거듭한 끝에 지난 3일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이 법을 처음 입안한 김 전 위원장은 “그 동안 일만 생기면 청탁전화, 돈 봉투를 챙기던 우리의 부패한 습관과 이제는 싸워야 한다”며 “가장 큰 적은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 안의 부패 심리와 싸워서 관행을 고쳐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법이 2012년 8월 입법예고 된 원안에서 후퇴한 내용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히 ‘공직자이해충돌방지 규정’이 빠진 것에 대해 법이 다소 후퇴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컨대 장관이 자기 자녀를 특채 고용하거나 공공기관장이 친척 회사에 특혜로 공사발주를 하는 등의 사익 추구를 금지시키자는 것”이라며 “반부패 정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어서 함께 시행돼야 했는데 분리됐다”고 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은 원안의 3개 분야 중 ‘부정청탁금지’와 ‘금품수수금지’만 포함됐을 뿐, 가장 비중이 큰 한 가지(이해충돌방지)가 빠져 “반쪽짜리 법”이라는 게 그의 평가다.
법이 선출직 공직자의 제3자 고충민원 전달을 부정청탁의 예외로 규정한 것에는 강한 비판을 가했다. 김 전 위원장은 “원안에는 없던 내용인데, (민원에는) 입법청탁이나 인사청탁이 포함될 수 있어 부정청탁의 소지가 있다”면서 “자칫하면 국회의원의 브로커 현상을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형식적으로만 제3자 고충일 뿐, 내용상 부정청탁에 해당하는 민원의 문(門)을 국회의원에게 개방해 버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해법으로는 “본인들이 스스로 걸러서 막겠다는, 스스로 돌파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초 원안보다 적용대상이 대폭 늘어난 것에 대해 “뜻밖에 국회에서 언론과 사립학교를 추가해 사실 깜짝 놀랐다”면서 “하지만 민간분야 부패척결도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공직사회를 새롭게 개혁하고 2차적으로 기업, 금융, 언론 등 모든 민간분야로 확대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국회에서 민간분야 일부의 반부패 문제를 개혁하려는 마당에 이를 잘못됐다고 비판만 할 수는 없다”며 “장차 확대시킬 부분이 일찍 확대됐을 뿐”이라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어 대한변협이 위헌소송을 제기한 것과 관련,“우리 국민 69.8%가 ‘바람직하다’고 평했다는 여론조사를 보면 과잉입법이나 비례 원칙을 위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 법 적용의 확대를 시도한 것이어서 평등권의 문제도 아니다”고 옹호한 뒤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다만 “우리 헌법상의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언론의 자유는 특별히 보호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언론인 수사 때는 특별한 소명과 사전 통보 등의 장치를 두어 법이 언론 탄압의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밖에도 김 전 위원장은 ▦100만원 이하 금품수수 시 직무관련성이 있을 때만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한 점 ▦적용대상 가족 범위를 배우자로 축소한 점 ▦가족 금품수수 시 직무 관련성을 요구한 점 ▦부정청탁의 개념을 축소한 점도 김영란법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벌써부터 법 개정을 언급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못박았다. 일단 시행하면서 부패문화를 바꿔보고 그래도 안 되면 보다 더 강화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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