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는 日의 국가주의 비판
中설치미술가 쉬전은 껍데기에 가격 매기는 예술시장 풍자
韓 설치작가 양아치, 中日작품 사이서 대화 시도
“1945년… 잘 모르겠어요. 아니 정말 모르겠는데요.”
영상은 입만 비춘다. 말하는 이의 표정을 알 수 없다. 이따금씩 화면이 흔들릴 때 눈가에 멋쩍은 주름이 보였다. 한중일 3국에서 작가 한 명씩 참여한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획전 ‘미묘한 삼각관계’에 일본 영상작가 고이즈미 메이로가 내놓은 작품 ‘구술사’는 일본인 170명에게 “1900년에서 1945년까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져 나오는 답을 촬영해 이어 붙인 영상이다.
170명 중 대다수는 모른다고 하거나 ‘다이카 개신(646년)’‘오케하자마 전투(1560년)’같은 엉뚱한 답을 내놓는다. “아편 전쟁(1860년까지)과 베트남 전쟁(1956년부터)이 있었다는 것밖에 몰라요”라는 답을 들으면 ‘일부러 바보 연기를 하나’하는 생각마저 든다. 개중 긴 대답은 이렇다. “전쟁은 모두가 잘못입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들은 정의의 편이 아닙니다. 당신들은 일본인으로 (중일)전쟁에 참전했잖아요.” 일본인들이 편리하게 사실을 취하고 기억함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게 꼭 한국인만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히로시마 핵발전소”라고 말하는 이들을 보면, 전쟁은 자신과 상관없는 흐릿한 사건일 뿐이다.
이 작품에 대해 고이즈미 메이로는 “일본인 하면 알려진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캐나다로 유학했고 지금은 암스테르담과 파리에서 작업한다. “일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제3자의 눈으로 일본인을 보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일본의 어리석은 국가주의를 비판하지만, 지배담론에 휩쓸리는 개인에 대한 시선에는 연민이 묻어난다.
중국의 설치미술작가 쉬전은 모든 것이 시장 질서에 편입되는 중국의 상황에서 예술의 가치를 묻고 있다. 그의‘상하-아트 슈퍼마켓’은 중국 상하이의 실제 슈퍼마켓을 전시장 내부에 그대로 재현하고 상품도 판매한다. 그러나 물건을 사서 뜯어보면 내용물이 없다. 껍데기에 불과한 이미지에 가격을 매기는 퍼포먼스를 통해 예술시장을 풍자한 것이다. 쉬전의 작품은 미적으로 멀쩡한 것이 없다. 청나라 꽃병의 입 부분을 구부려놓거나 당나라 석상의 목을 자르고 그리스 석상을 얹어놓는 식이다. 전통사회가 급속히 현대화하며 가치질서가 뒤틀려버린 중국의 현실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한국의 설치미술작가 양아치는 이들 사이에서 대화를 시도하려 열심이다. 고이즈미의 영상 앞에 마이크를 대고 흘러나오는 음성을 영상으로 재구성하고(‘기억술(아버지)’), 쉬전의 작품 옆에는 돌덩어리에 금칠을 한 작품 ‘황금산’을 세웠다. 음악, 영상, 설치작품과 조명으로 구성한 ‘바다 소금 극장’을 통해서는 어린 시절 부산의 밤바다에서 느낀 우울한 감각을 재현하고자 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은 이 전시는 3국의 문화적 대화를 실현하겠다는 야심 찬 기획의도를 깔고 있다. 하지만 제목 ‘미묘한 삼각관계’부터 세 나라의 비슷한 듯 다른 생각을 표현하는 것같다. 제목을 똑같은 한자로 쓰고 각기 다르게 읽는 세 나라의 참여작가들은 딱히 경쟁도, 협력도 않으면서 제 할 말을 한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각 나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불러냈다. 제대로 된 대화는 이제 가능할 것이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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