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연출가 정의신 첫 창극
국립창극단 '코카서스의 백묵원'
“판소리 ‘심청가’를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한국말은 서툴지만, 제 안의 한국적인 부분을 펼쳐볼 작정입니다.”
2008년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연극계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재일동포 연출가 정의신(58)씨가 창극에 도전한다. 브레히트의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정씨가 오늘날의 시선으로 각색, 연출하고 작곡가 김성국이 판소리에 없는 화성체계를 보강해 선율이 부각되는 곡을 선보인다. 국립창극단의 새로운 도전이다.
7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정씨는 “어제 삽입곡을 들었는데, 굉장히 좋은 곡이 몇 곡이나 나왔다”며 “판소리 오페라 뮤지컬을 섞은 곡들이 장면마다 어떻게 융합될지 나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재일동포 부자(父子)의 자학적 삶을 그린 영화 ‘피와 뼈’(2004) 각색에 참여했던 정씨가 연극계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자전적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이었다. 1969년 일본 간사이 지방의 조선인 부락 한 켠 ‘야끼니꾸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을 배경으로 재일교포 가족의 일상을 그린 이 작품은 그 해 한국과 일본 주요 연극상을 휩쓸었다.
이 작품을 비롯해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나에게 불의 전차를’ 등 서민과 소수자들의 애환을 웃음으로 그려낸 ‘정의신표 연극’은 재담 끝에 깊은 페이소스를 선사하는 판소리와 맥을 같이한다. 정씨는 “서양 희곡과 한국 판소리가 어떻게 융합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며 “원작이 노래를 포함한 가극이라 판소리와도 잘 맞다”고 소개했다.
원작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전쟁통에 버린 자식을 유산 욕심에 되찾으려는 영주 부인 나텔라와 버려진 아이를 거둬 키운 하녀 그루셰의 갈등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고민을 빗댄 작품이다. 정씨는 “평화를 소망하는 메시지는 원작과 같지만 결말은 전혀 다르다”며 “의상을 통해 지배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대립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원작의 인물 이름을 그대로 쓰는 대신, 생모와 양모의 소리 대결에 초점을 맞춰 진정한 모성애를 묻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등장인물도 새롭게 해석해 원작의 가수 역할을 재판관 아츠닥에게 맡겨 전통 창극의 도창(導唱ㆍ노래를 이끌어가는 역할) 형식으로 바꿨다. 그루셰와 약혼자 시몬 등 주요 역할에 창극단 입단 8개월 차인 인턴단원 조유아(28), 최용석(26)을 발탁한 것도 화제다. 인터뷰 내내 일본어로 수줍게 대답하던 정씨는 파격 캐스팅에 대해서는 한국어로 “후회는 없어! 배우를 한 번 택하면 끝까지 믿고 간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첫 도전인 만큼 난관도 많다. 정씨는 “오페라 뮤지컬과 비교해 창극은 노래의 힘이 가장 센 장르”라며 “뮤지컬처럼 움직이면서 노래하는 게 적합하지 않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로 43m에 달하는 넓은 무대 위의 노래가 객석으로 제대로 전달될지도 미지수다. 때문에 이번 공연에서는 1,500석에 달하는 객석을 비우고, 무대 위에 객석과 무대 세트를 세운다.
그의 작품에 늘 등장하는 유머 코드는 이번에도 빠지지 않는다. 정씨는 “인생에는 희비극이 교차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비극에 초점을 맞췄다면 나이가 들수록 희극에 무게를 두게 된다”고 덧붙였다. “주역도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한 집단극으로 만들 겁니다. 배우들이 함께 만드는 재미난 장면을 주목해 주세요.”
21~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80-4114∼6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