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주전산기 전환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KB금융그룹의 내분 사태는 관치 금융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각기 다른 줄을 타고 내려온 낙하산 인사들 간의 힘 겨루기가 문제의 원인이 됐다면, 징계를 빌미로 한 금융당국의 지나친 개입은 사태를 더욱 파국으로 몰고 갔다.
KB금융의 새로운 선장이 된 윤종규 회장이 독립경영을 기치로 내건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고질병이었던 정ㆍ관계의 외풍(外風)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라는 점에 이견이 없었다. 윤 회장은 취임 후 100일 동안 지배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함과 동시에 내부 인사 중용, 그리고 경쟁사 최고경영자(CEO) 출신 영입 등을 통해 독립 경영을 위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KB의 이런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듯했다. KB 사태를 겪으며 투명한 지배구조야말로 금융발전의 기본이라는 공감대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배구조 개선작업이 더디다는 이유로 사외이사 전원 사퇴 등을 압박하며 LIG손해보험 인수 승인을 미루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KB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며 공석이 된 주요 보직을 놓고 외압설, 내정설 등이 끊이질 않는다. 공석인 KB금융지주 사장 자리를 둘러싼 잡음이 대표적이다. 윤 회장이 사장직 부활을 검토하자 정부와 정치권에서 여권의 전직 국회의원과 영남 출신의 KB금융 퇴직인사 등을 앉혀달라는 인사 청탁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윤 회장 측은 전문성 부족을 이유로 고사했고, 결국 사장직 부활을 보류한 상태다. 정병기 전 감사가 사퇴하며 빈자리가 된 국민은행의 상임감사위원 자리 역시 여러 곳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석 달째 후임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KB캐피탈 사장 자리에 KB사태의 핵심 당사자 중 한 명인 박지우 전 부행장을 내정한 것 역시 석연치 않다. 그가 현 정부 실세그룹 중 하나인 서금회(서강금융인회) 회장직을 6년 동안 맡은 전력이 있다는 것과 무관치 않을 거라는 게 금융계 중론이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KB사태 당사자들이 모두 물러난 지금, 겨우 2개월 만에 그의 복귀를 결정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보인다.
지금 KB금융의 외압의 진원지가 단지 청와대나 정치권 만은 아닌 듯하다. 금융당국 또한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있거나, 오히려 더 조장하고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KB금융을 압박했던 것이 정말 이런 낙하산 인사를 내려 보내기 위한 것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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