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위반 여부 수사 속도… 경찰, 휴대폰 통화·계좌 내역 분석
배후 세력ㆍ공범 있는 지도 수사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대표 김기종(55ㆍ구속)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상 이적(利敵)성 혐의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은 김씨의 휴대폰 통화 및 계좌 입출금 내역을 분석해 배후세력이 있는 지도 수사 중이다.
미국대사 피습사건 수사본부(본부장 김철준 서울경찰청 수사부장)는 8일 김씨의 자택 겸 사무실을 압수 수색해 서적, 간행물 등 표현물 48점과 휴대폰, PC 등 디지털 증거물 146점 등 총 219점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가운데 이적성이 강하게 의심되는 북한 원자료 6점 등 총 30점을 확인하고 외부 전문가에게 이적성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 의뢰물 중에는 김정일이 직접 저술한 ‘영화예술론’과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에서 발간한 기관지 ‘민족의 진로’, 주체 사상 학습 자료 등이 포함돼 있다. 국내에서 조직된 범민련은 1997년 대법원 판결로 이적단체로 규정된 단체다. 경찰은 이와 함께 디지털 압수물 146점에 대해 디지털 포렌식으로 분석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USB 저장 내용, 휴대전화에서 삭제된 데이터 등을 복원해 면밀히 살피고 있다.
김두연 서울경찰청 보안2과장은 이날 수사 브리핑에서 “자체 분석과 더불어 대학 소속 연구기관 등 외부 기관에 감정을 맡겼다”며 “판례와 감정결과에 따라 이적성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적표현물에 대한 기존의 법원 해석을 보면 어느 정도 수위의 표현까지 이적성을 인정했는지 알 수 있는데, 이를 토대로 1차적으로 이적성을 판단한 후 외부 감정 기관에 보내 2차 검증을 받겠다는 뜻이다. 이적성에 대한 법적 판단은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했느냐가 기준이다.
김 과장은 “이적물 단순 소지만으로 처벌할 수 없고, 이적 목적성 등이 규명되면 처벌할 수 있다”며 “(국가보안법 상)찬양ㆍ고무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면 국보법 위반 혐의로 처벌하겠다는 뜻이다. 김씨는 현재 살인미수, 외국사절 폭행,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경찰은 법원에서 김씨의 통신 사항과 금융계좌에 대한 압수영장을 발부 받아 공범 또는 배후세력이 있는지도 확인 중이다. 우리마당 후원자 및 김씨의 주변 인물들이 1차 수사대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이적성 표현물을 소지한 것과 관련해 “북한 전문 석사과정을 마쳤고, 통일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1995년 숭실대 통일정책대학원에서 낸 석사논문 ‘남한사회 통일문화운동의 과제’를 본보가 입수해 확인한 결과, 김씨는 1993년 범민련이 출간한 ‘범민련 자료집 1’ 등을 참고문헌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일과 김일성이 직접 쓴 책들은 김씨의 석사논문에는 인용되지 않았지만, 북한 관련 논문들에서 일반적으로 인용돼 왔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가 문제의 이적표현물들을 단순 연구용으로 사용한 것 외에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찬양하는데 사용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경찰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씨의 국보법 위반을 언급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적단체라 하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봐야 하는 게 당연하다”며 “원문을 옮기면서 선전한 거라면 모를까 단순히 학문을 목적으로 본 것을 두고 국보법 적용을 검토한다면 북한 탐구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경찰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자칫 (수사가)종북몰이로 확대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며 “학술활동에 대한 지나친 제재는 북한 연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지난 5일 오전 7시 40분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리퍼트 대사의 얼굴 등을 과도로 찌른 혐의로 구속 돼 종로경찰서에서 조사 받고 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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