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단축 ‘스피드업’ 규정에 “소련야구 하는 줄 알았다”
프로야구 경기 시간 10분 단축을 목표로 내건 ‘스피드업’규정 강화에 대한 현장 반응이 냉랭하다. 한국야구위원회(KB0)는 사전 교육까지 했다지만, 벌써부터 뒷말이 무성하다.
이진영(LG)과 김경언(한화)은 8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양팀의 시범경기에 앞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설된 스피드업 규정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였다. 둘은 전날인 7일 대전 경기에서 나란히 타석에서 벗어나 삼진 아웃을 당했다. 무의식 중에 나온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이진영은 7일 경기 4회초 2사 1루 볼카운트 1볼-2스트라이크에서, 김경언은 3회말 무사 1루 볼카운트 2볼-2스트라이크에서 타석을 벗어났다. 김경언은 6회말에도 1스트라이크 이후 또 한 번 타석을 벗어나 애꿎은 스트라이크만 1개 늘어났다.
KBO는 늘어지는 경기 시간을 단축하고자 지난해 말 규칙위원회를 열어 스피드업 규정을 강화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건 ‘타자는 타석에 들어선 순간부터 최소 한 발은 타석 안에 두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이 나오면 뛰어서 1루로 출루해야 한다’ 등 다른 규정과 달리 경기력과 승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언은 “투수와의 승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취지는 좋으나 불이익을 받는 선수가 많을 것이다. 선수는 각자의 타격 스타일이 있다”며 “규정이 신설됐을 때도 ‘내게 불리하겠구나, 난 삼진 많이 당하겠구나’ 걱정부터 앞섰다”고 말했다.
이진영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삼진 후 벤치에서 멋쩍은 웃음을 보이던 그는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한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아쉽다. 무슨 소련 야구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양상문 LG 감독 역시 “심판들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만약 9회 말 만루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큰일 날 수 있다”며 “보완책을 내놓든 다시 협의를 하든 조치가 있지 않겠나”고 말했다.
타 구단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이대형(kt)은 이날 목동 넥센전에 앞서 “선수로서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타석에서) 나갔다가 지금은 의식하고 있다”면서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타자 만의 습관이 있는데…”라고 했다.
넥센 관계자는 아예 “포수가 볼을 잡고 있고 투수한테 공이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타자는 아웃이 된다. 이 부분이 어떻게 스피드업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최악이다”고 쓴 소리를 뱉었다. 이 관계자는 “제도를 바꾼다면 세밀하게 해야 한다. 아직은 부족한 면이 많다”며 “경기 시간은 선수들의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투수들의 수준과 관련 있다. 투수들이 좋은 팀은 경기 시간이 줄어든다. 타자의 행동을 규제한다고 해서 시간이 줄어드는 건 절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함태수기자 hts7@hk.co.kr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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