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줌마크라시’란 말이 나와 한참 웃었다. 민주주의(Democracy)가 고대 그리스어로 민중을 뜻하는 ‘데모스(demos)’와 권력이나 지배를 뜻하는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로 ‘민중의 지배’를 말하듯, 한국 가정의 ‘아줌마 권력, 아줌마의 지배’를 빗댄 말이었다. 월급이 통째로 아줌마 통장에 들어가 대학생 자녀보다 적은 용돈을 받으면서도 그저 남편 자리만 온전하길 빌며 산다는 등의 넋두리가 길었다. 중년 남성들의 슬픈 자화상이지만, 아직 그런 얘기를 웃으며 할 수 있다는 것만도 여유로웠다.
▦ 그렇게 막강한 아줌마도 집밖에서는 미혼 여성과 다를 바 없는 사회적 약자다. 한국의 ‘유리천장’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28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보도가 거듭 확인시킨 사실이다. 세계여성의 날(어제)을 앞두고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해 발표한 한국의 ‘유리천장 지수’는 25.6으로 OECD 꼴찌였다. 1위인 핀란드의 80이나 공동 2위인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73.1은 물론, 평균 60과도 아득한 차이다. 한국 바로 위로는 일본(27.6)과 터키(29.6)가 자리 잡았다.
▦ 이 지수는 고등교육과 임금격차, 기업체 임원이나 고위공직자의 여성 비율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한국은 ‘노동시장 참여율 격차’가 22%로 터키(42.6%) 빼고는 가장 컸고, 기업이사회 여성 비율이 2.1%로 가장 낮았다. 남녀 임금격차도 36.6%로 평균(15.5%)의 배, 노르웨이(7%)의 다섯 배를 넘었다. 흔히 인용되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성(性) 평등 지수’도 2013년 한국은 142개국 중 117위에 그쳤다.
▦ 이런 통계가 아니더라도 여성의 사회진출과 그 이후의 승진을 가로막는 한국사회의 유리천장은 단단하다. 최근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앞지르고, 공무원 시험 성적 등도 남성에 앞서기 시작했지만, 취업과 승진에서 수시 작동하는 ‘성비(性比) 조정’에 비추어 전체 성 평등 수준의 빠른 개선은 전망이 흐리다. 어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는 “성 평등은 모두를 위한 진보”라고 외쳤다. 남성들이 얼마나 귀담아 들었을까.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